예배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교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교인들에게 예배의 정의를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결과는? 세 명 중 두명은 모른다고 했고, 대부분 의미 없는 답변만 늘어놓았다.
예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다,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다, 예배는 예배자의 참여가 있어야 한다.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예배는 고대영어 weorthscipe라는 단어에서 나온 것으로 ‘가치를 돌리다, 경의를 표하다, 존경하다, 숭배하다’라는 뜻이다.
예배의 대상은 우리가 아니다. 참된 예배라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오늘날 예배는 예배자와 예배받으실 분 사이의 수직적 관계 대신 회중의 경험에 초점을 두는, 사람들을 위한 예배로 변했다. 다시 말해 ‘우리’를 위한 예배로 전략했다는 것이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기다리고 신뢰하면서, 하나님께 마음을 여는 일이다.
워십의 초점은 하나님이어야 한다.
“설교는 정말 좋았는데, 예배에서 얻은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아.”→예배의 대상은 우리가 아니다. 예배는 피조물이 창조주를 경외하는 일, 구원받은 자가 구원자에게 사랑과 경배를 드리는 일이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을 향해야 한다.
예배는 예배자의 적극적인 참여갸 있어야 한다.
절,노래, 찬양의 말을 선포, 손뼉치고, 엎드리며, 무릎 꿇고, 손을 높이 들고
나는 온전한 사람이다. 따라서 내 모든 존재로 에배한다.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햄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18,26)
예배는 관중석에 앉아 구경하는 운동경기가 아니다. 예배는 성도의 참여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엄숙하게 전심으로 예배할지라도 ‘예수님’이라는 화목제물이 없다면 우리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히13:15) → 찬송이 예수님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니라(롬12:11) 이러한 예배를 드릴 때, 육적인 것이 영적으로 변한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려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에배할지니라(요4:23,24)
영으로 예배한다는 말은 내면의 자아가 참여한다는 뜻이다. 참된 예배란 행동만이 아니라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응답한다는 의미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습관은 마음으로 드리는 참된 예배에도 방해가 된다.
예배의 다양한 측면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말씀의 깊이나 의미는 사라진지 오래다. 행동만 할 뿐 영은 그 일에서 빠져 있다.
마음이 없다면 예배가 아니다. 마음이 없는 예배는 연극이나 연기에 불과하다. 예배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진지함이 빠져 있다면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할 수 없다.
예배는 우리의 마음, 즉 영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찬양의 가사를 진심으로 고백하며 찬양하는가? 행동만 하는가? 아니면 영과 마음, 그리고 내면의 자아를 다해 예배하는가?
예배의 기초는 하나님 말씀이 되어야 한다.(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마15:9 ,막7:7)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막 12:30)
참된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린다. 영은 진정한 자아에서 진리는 하나님 말씀에서 나온다. 영이 있으면 체험할 수 있는 예배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예배는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으나 성경적 기반이 부족하다. 즉, 예배드리는 마음에 흥분과 열정은 가득하나 말씀의 기초가 없다는 말이다. 반면에 진리만 있으면 마음이 빠지고 습관만 있게 된다. 따라서 이 두가지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모든 행동은 영적인 진리를 육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오직 하나님을 향한 마음에서 나온 행동만이 중요하다.
당신이 하나님을 좋게 생각하고 있다고 만족하지 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결혼한지 25년이 넘은 부부가 지금까지 감정을 표현한 적이 없었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서로 사랑한다는 건 확신하지만, 그 사랑을 절대 표현하지 않는다면? 아마 당신은 그 부부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할 것이다.)
예배는 온몸을 다하여 드려라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과 싸웠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출17:8-13)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11절) 우리는 여기서도 육체적 행동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법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주셨다.
“시편 47:1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손바닥은 음악의 장단을 맞추고자 치는 손뼉이 될수도 있지만 박수갈채가 될 수도 있다. 하나님께 박수갈채를 보내라.
“시편 66:1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낼지어다.” 우리는 때로 성경말씀 대신 우리가 배운 문화를 바탕으로 많은 것을 판단한다. 하나님께 기쁨으로 외쳐라!
“시편 95:6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우리는 절하고 무릎을 꿇음으로, 자신을 낮춰 주님의 위대하심을 인정할 수 있다.
“시편 96:1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하나님은 우리가 올려 드리는 찬양에 싫증 내지 않으신다. 반복해서 듣는 똑같은 말에 싫증내는 건 오히려 우리다. 예배에는 새로움과 참신함이 필요하다.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자!
“시편 149:3 춤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즉흥적인 춤, 안무가 있는 춤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자!
“시편 150:3-5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현악과 퉁소로..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다양한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라!
예배는 오직 하나님만 향해야 한다
예배는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위한 게 아니다. 주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예배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들은 이미 관객이다. 우리가 집중할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다.
다윗은 언약궤가 이스라엘로 돌아올 때 춤추며 기뻐했다. 하지만 미갈은 남편의 행동을 반가워 하지 않았고 천박하게 봤다. 그 때 다윗은 이렇게 말했다 “이는 여호와 앞에 한 것이니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괜찮다 삼하21-22절” 이 말을 “여보, 당신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게 아니야, 하나님을 위해서지.” 라는 뜻이다.
예배할 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아닌 자신의 모습에만 신경 쓴 적이 있는가? 우리는 너무 쉽게 주님께 예배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주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집착한다. 예배는 사람들을 위한 게 아니다. 오직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예배는 삶의 일부이므로 습관처럼 예배해야 한다
하나님은 ‘예배 행위’를 원하시는 게 아니라 ‘예배하는 사람’을 원하셨다. 예배자를 찾고 계셨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이러한 예배를 위해 아침에 일어나 항상 이렇게 선포하면 어떨까? “주님, 오늘도 저는 주님께 속해 있습니다.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가든 제 삶으로 주님께 경배와 영광을 드리고 싶습니다.” 주님께 자신을 드리는 일을 습관처럼 하라. 자신을 정기적으로 산 제물로 드려라.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이를 일주일에 한번 닦는 다고 생각해보라. 그것으로는 치아가 깨끗해지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예배에 대해서 이와 비슷한 태도를 보인다. 그들은 6일 동안 하나님을 무시하다가 주일 아침이면 예배하러 교회에 모인다. 그러나 주님 대신 잔뜩 쌓아 놓은 세상적인 생각이 주일에 드리는 1시간짜리 예배로 완전히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영적인 근육을 계속 사용하지 않으면, 주일마다 예배를 드린다 해도 결국 무용지물이 된다. 건강한 예배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 그들은 부엌으로도 충분하다.
참된 예배자가 되려면, 일상생활의 필수 요소로 예배가 자리 잡아야 한다. 참된 예배자는 매일, 그리고 종일 예배하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이다.
예배는 위대하신 하나님과 마주하는 순간이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느낄 수 있는 경외감과 존경이 예배의 중심요소로 회복되지 않으면, 올바로 예배했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할 때가 잦다. 뷔페에서 음식을 골라 먹듯, 모두 자기 마음에 드는 신학으로 만든 상상속의 하나님을 예배할 뿐이다-맥도웰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편 139:2-4)
두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 우리는 하나님의 경외감과 놀라움을 항상 느껴야 한다.
우리 예배는 너무 세속적이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는 사라진지 오래다. 우리는 예배하는 장소에 하나님이 실제로 계신 것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예배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뻐하는 표현이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을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워너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 도다(롬7:18-19)”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다. 우리 안에 있는 죄성 때문에, 올바른 일보다는 나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롬14:23)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5)”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
모든 시공간을 초월해서 가장 압도적이고 경이로우며 놀라운 사건은, 하나님이 이 땅에 내려오셔서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셨고 우리 손에 죽임당하신 사건이다. 즉, 그분은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으며, 우리를 주님의 자녀이자 신부가 되게 하셨다. 그러나 이 사실은 일 년마다 돌아오는 자동차보험 갱신처럼 깜빡하고 지나쳐 버리기 쉬운 일이 되어 버렸다. 기억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늘어난 것에 불과하다.
참된 예배자가 되고 싶다면, 하나님이 나를 위해 하신 일을 계속 기억해야 한다.
예배는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이다
예배에 대한 다른 생각
찬양은 활발하고 담대하게 불러야 한다. 멀리 앉은 사람에게 들릴 정도로 크게 부르지 마라. 사람들과 조화롭게 불러라. 거룩하게 불러라. 시선은 오직 하나님께만 맞추어라. 나 자신과 그 누구도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만 초점을 두라. 자신이 부르는 노래에 집중하되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노래한다고 생각하라. - 요한 웨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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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날 알고계시고 난 매주 항상 예배자들을 인도하는 예배인도자로써 나서고 있다.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자리인가. 우리가 에배하는 곳에 하나님은 함께하고 계시고 우리의 예배를 지켜보고 계시고 받고 계신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는가.. 내가 이토록 크고 놀라운 구세주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존재로 태어난 것에 무한한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돌려드린다. 또한 앞으로는 내가 부르는 찬양이 회중을 향한 찬양인지 하나님을 향한 찬양인지 명확히 구별해야겠다. 찬양의 방향을 회중으로 향했던 적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우리를 위한 CCM을 예배 속에서 부른 적도 많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동안 몰랐던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제 알게 되었으니 워십을 할 수 있는 찬양을 선곡해야겠다.
무엇보다도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갑자기 무섭고 떨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심코 아무렇지도 않게 습관적으로 죄를 짓는다. 하지만 내가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무슨 행동을 하고 있던지 하나님께서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켜보고 계시고 내가 말을 하기 전에도 나보다 먼저 내가 할 말을 알고 계신다 한다. 책을 몰입해서 읽다가 잠깐 산책하러 나간사이에 나는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앞으로는 조금이라도 더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겠다. 항상 기도해도 부족하다. 내 안에 있는 죄성으로 말미암아서 나는 지속적으로 죄를 짓고 싶어 하는 습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책이 너무 좋다. 지금까지 읽었던 기독교 서적 중에서 가장 좋은 것 같다. 그렇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 사람이 지은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정도의 책을 출판할 정도의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고 그러한 사람들을 키울 수 있도록 학생사역을 맡겨주신 하나님께 찬미를 올려드린다. 중등부 사역이 너무 힘들고 2옥타브도 이상으로는 어려워하는 아이들 덕분에 선곡하는 것이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봐야겠다. 과거의 마음가짐과 이 책을 통해 바뀐 마음가짐이 아주 확연하게 다른 것 같다. 이번주 중등부 토요예배가 기대된다. 아이들은 저번 주와 마찬가지로 예배에 대한 무지와 그냥 습관과 같은 찬양을 부르고자 하겠지만 인도자로써 주님께서 주신 힘으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해서 우리 아이들이 정말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만을 예배할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 옆 친구 눈치 보느라 찬양을 못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 그들에게 찬양은 옆 친구를 위해서 부르는 것이 아니라고 선포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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