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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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5415
2012.01.25 (18:54:28)

 

 

본문 : 20:29-30

제목 : 흉악한 이리

설교 : 이남웅 목사(95.11.15.)

 

지난 시간에는 목회자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목회자 가운데 [흉악한 이리]로 표현된 이리 같은 목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리란 늑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간사하고, 교활하고, 사납고, 무섭고 떼를 지어 다니며 약한 짐승들을 잡아먹는 아주 야비한 짐승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목회자를 이리그것도 아주 흉악한 이리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교회 안에 있어 하나님의 양을 잡아먹는 흉악한 이리라는 목자가 아니라 사탄의 사자입니다. 바울사도는 자기가 떠난 후에 에베소 지역에 이런 목회자가 생길 가봐 염려했습니다. 그러면 이런 악한 목자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1) 첫째로 양떼를 아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바울사도는 밤낮 눈물로 3년이나 각 사람을 훈계하며 교회를 세웠는데 흉악한 이리는 양떼를 아끼지 않고 잡아먹고 팔아먹고, 내 쫓고 흩어버립니다. 11“16에 못된 목자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며, 살찐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했습니다. 아주 무정하고 잔인한 목자입니다. 그러니까 흉악한 이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반면 훌륭한 목자는 양들에게 관심이 많고 없어진 양을 찾아오고 즉 잃어버린 양의 비유가운데 있는 한 마리의 양을 찾으려고 목자가 산 넘고 길을 지나서 찾아오는 얘기와 같습니다. 훌륭한 목자는 자기 양을 쉽게 잊어버리지도 않고 사라져버린 양을 끝까지 따라가서 찾아옵니다. 그리고 상심한 자는 위로해 주고 강건한 양은 말씀을 잘 가르치고 설교에 신경을 쓰고 양 무리가 은혜 받도록 최선을 다하여 섬기고 -사역 중에 최고의 사역은 설교와 가르침입니다. 목회에 전심전력을 투구하는 목자가 은혜를 받고 목장이 기름지고 풍성해 질 때 하나님께서도 영광이 되고 양 무리가 강건해 질 때 그 목회가 아름다운 것입니다. 목자가 교회를 위해 희생할 때 그 교회는 살찌고 부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돌아보지 않고 나돌아 다니는 것은 건전한 것이 아니고 또 교회도 빈핍해지는 것입니다. 이는 집안 살림-가정 돌보지 않고 밖으로만 나돌며 주색잡기로 지내는 남편과도 같습니다. 이런 병신 남편 보셨나요. 모든 목회자는 자기 목장부터 잘 돌보고 나서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흥회를 많이 다니는 목사님들의 교회가 은혜가 없고 부흥이 안 되는 것은 자기 교회를 돌보는 데는 소홀하고 부흥회 하는 데만 신경을 쓰기 때문입니다. 부흥회를 다니면서도 목회를 진실하게 할 수 있습니다. 목회도 잘 하고 부흥회도 잘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없어도 교회가 잘 되도록 조직적 목회, 팀 목회조직을 잘 짜서 목회에 아무지장 없도록 해야 합니다.

 

양떼를 아끼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 관심도 없이 행하면 교회가 부흥되지 않습니다. 교회가 커졌을 때 부 교역자들을 많이 쓰는 것은 목사님의 손이 안 닿는 먼 곳에 위치한 성도들을 잘 돌보기 위함입니다.

 

2) 둘째로 흉악한 이라는 자기 사람을 만드는 자입니다.

20:30절에 또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쫓게 하려고......., 했습니다.” 목자라면 양 무리로 주님을 쫓게 해야지 자기를 쫓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양이지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내 양을 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양을 치는 일군들입니다.

 

끼 있는 여자는 모든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하고 끼 있는 남자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남 사이에 끼어들기를 시작합니다. 부부사이에 끼어들고 친구사이에 끼어들고 이렇게 흉악한 이리 같은 목자는 하나님과 양 무리사이에 끼어듭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자기 사람을 만드는 종은 흉악한 이리입니다. 마치 아버지 다윗의 백성을 친절을 베풀어서 그들의 마음을 도적질했던 압살롬 같은 자입니다. 친절은 좋으니 성도들의 마음을 빼앗으면 안 됩니다. 영광을 받으실 이는 오직 참 목자이시고 목자장 되신 그리스도십니다. 그리고 교인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소속이 되어야지 개인 사역자에 밀착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3) 셋째로 흉악한 이리는 어그러진 말을 하는 목자입니다.

어그러진 말이란 틀린 말을 가리킵니다. 무엇이 틀리냐하면 우리 주님이 하신 말씀과 다른 말을 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성경과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자를 이단자 혹은 흉악한 이리라는 것입니다. 양의 탈을 썼으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가 들어있는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말을 하려면 바른 말을 해야 하고 설교를 하려면 성경진리를 설교해야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다른 설교를 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고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단자들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사람들의 주위를 끌다가 슬며시 딴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리석은 신자는 따라가다가 마음을 뺏기고 미혹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이단사상을 교회 안에 끌어들이는 목자가 이리인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이와 같은 이리가 얼마나 많이 생겼는지 모릅니다. 교회는 진리를 파수하기 위하여 이렇게 다른 말하는 이리들을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교인들이 그런데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조금만 이상한 소리를 하면 당장 주목을 받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부작용도 있지만 기성 교회와 교단들이 이렇게 눈을 부릅뜨고 진리를 수호하고 있기 때문에 순수한 말씀과 전통이 잘 유지되어 오는 것입니다. 이단자들이 일어날 때마다 이구동성으로 [기성교회는 썩었다. 잘못 되었다. 우리한테 와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그들의 기원이 마귀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수 천년동안 진리를 지켜온 기성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는 자기가 떠난 후에 이런 요사스러운 무리가 사단의 역사를 따라 일어날 것을 알고서 교회의 교역자들을 불러서 부탁의 말씀을-경계의 말씀을 한 것입니다.

 

4) 넷째로 흉악한 이리는 물질을 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면 하나님의 사람답게 물질에 대해 담백하고 깨끗해야하고 탐욕이 없어야합니다. 물질에 대해 눈이 뜨이면 노태우 씨 같아집니다. 바울사도는 33절에서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했습니다.

 

돈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지 사욕을 위해 물질을 탐하면 대개는 이단자가 됩니다. 박태선 씨가 시온 재벌을 만들었고 문선명이가 통일 재벌을 이루었습니다. 돈 마귀가 그들과 함께 하여 경건을 이익으로 바꾼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창세기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으로 바꾼 아담과 하와를 마귀가 유혹했었고 주님이 시험받으실 때 첫 시험이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된 그 능력으로 먹을 것, 경제적인 문제부터 해결하고 신앙으로, 능력으로 돈 먼저 만들고 돈 벌어 잘 살자 하는 것입니다. 이단자들의 배후에 있는 마귀는 그들이 돈에 눈이 뜨여서 신앙으로 돈 바꾸는 자가 되도록 유혹을 합니다. 하나님 허락하신 축복이 아니고 받은 은혜를 돈으로 만드는 자들은 다 이단입니다. 돈에 눈이 뒤집혀 사욕을 쫓는 자와 자꾸 무엇을 가져오라고 꽤는 자도 바른 목자가 아닙니다. 이런 것은 합법적인 헌금과도 다른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흉악한 이리에 속지 맙시다. 그들은 양떼를 아끼지 않고 귀한 줄도 모르고 목회에 전념하지 않고 딴 짓하고 돌아다니며 자기 사람을 만들고 어그러진 말을 하고 욕심이 많은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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