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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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4366
2012.01.27 (15:15:26)

 

 

본문 : 21:1-4

제목 : 성령의 감동

설교 : 이남웅 목사(95.11.26 .)

 

 

두로에 있는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는 말씀과 (4) 유대로부터 내려온 선지자 아가보라는 이가 바울의 허리띠를 가지고 자기의 수족을 묶은 후에 [성령이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은 성령의 감동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1) 첫째로 성령의 감동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영적인 사건을 일으키실 때에 자연인 그대로의 마음을 가지는 인간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자연적인 마음 상태를 벗어난 황홀한 경지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향한 의식이 높이 고양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높고 신비한 영적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성령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에 의한 것입니다.

 

그 원인은 인간 본래의 상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역사의 경향은 여러 가지이나 먼저 인간의 심령 중 특히 감정에 먼저 변화와 충격이 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런 상태에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나 하고자 하시는 일을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 모두가 다 죄인이지만 평상심-즉 보통 때의 마음으로는 그 죄를 기어도 다 안 되지만 기억이 난다해도 실감이 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죄 의식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저 죄가 있었나 보다하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그 마음을 감동시키면서 그 속에 있는 죄를 생각나게 하시면 잠재의식 속에 숨어있던 죄 된 과거들이 영화필름처럼 혹은 샘물 솟듯이 떠오르게 됩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조명 곧 마음을 비추시는 역사가 일어나면 평상시의 기억보다 몇 배 몇 십 배의 기억력이 고조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래 잊고 지내던 과거 일들이 알아지게 되고 자기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 본래의 실존인 죄인 된 모습의 자기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의 감동으로 고양 된 즉 높아지는 기억이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할 때 아직 일어나지 않고 발생되지 않은 미래의 일들이 보여 지고 알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는 죄를 깨달아도 감정이 그렇고 그런데 성령의 감동이 임하면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안타까움과 후회가 강열해서 애통과 통곡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본인도 모르게 터져 나오고, 먼저 눈물이 자기도 모르게 쏟아져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마음 비슷하게 된다고 할까요. 하나님께서 먼저 회개를 시키시고 차차 자신의 마음이 회개를 배워간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평상시의 마음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참 된 회개가 안 됩니다. 노태우 씨가 대 국민사과문을 낭독하는 그 정도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와 감동이 있어 만약 노태우 씨가 회개했다면 대성통곡하며 하나님 이 도둑놈 노태우가 여기 있습니다.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대우에서 250억 받고 또 현대에서 얼마를 받고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도둑질만 했으니 용서해주세요.엉 엉 엉-하고 끝없이 통곡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런 점이 평상심과 성령의 감동이 다른 점입니다. 어떤 경우는 마음이 완강하여 용서를 못하거나 교만하여 거역하거나 할 때 보통의 마음은 안 되지만 성령이 감동하시면 마음이 부드러워 지면서 [그래 용서하자]하게 되면서 하나님이여, 내가 그를 사랑하겠습니다.”하며 마음이 풀어지기도 합니다. 또 보통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가 어렵지만 기도하거나 찬송하거나 묵상할 때 성령이 감동하시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이 느껴지고 알아지고 들려집니다. 또 찬송의 가사가 마음을 감동시켜 눈물과 환희가 또는 깨달음이 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로의 성도들은 성령에 감동되어 무엇인가를 깨달았든지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 내용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매우 어려운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력하게 올라가지 못하도록 막은 것입니다. ‘아가보라는 선지자도 성령의 말씀을 듣고 예언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미 그러한 환난시험은 염두에도 없었고 예루살렘에 가서 죽어도 좋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올라가지 말라하셨다면 모르지만 그게 아니고 어렵고 무서운 결박이 기다린다.”는 계시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을 들은 선지자나 성도들이 올라가지 말라 한 것은 자기들 생각이었지 성령님의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런 시험이 있을 것]만을 말씀하신 것인데 예언자들이 그 말씀해석을 그대로 전하지 않고 자기들 마음에 [안 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것을 말했을 뿐입니다. 이와 같이 예언하는 자들은 하신 말씀 그대로 전해야지 인간의 생각을 덧붙여서 하나님의 뜻인 양 둔갑시켜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시험이 있습니다.”하는 것과 시험이 있으니 가지 마십시오.”하는 것은 큰 차이입니다. 시험 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가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냥 알려만 주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성령의 감동 중에 진리를 깨닫기도 하며 회개의 역사를 일으키기도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예언을 하기도 하며 약속을 하기도 하고 영적인 모든 일들을 체험하며 처리하고 있습니다. 혹은 방언이 터지기도 합니다. 예언과 통역과 성령의 지시가 오기도 합니다. 엘리사 같은 이도 이스라엘과 유대의 왕이 물으러 왔을 때 보통의 마음으로는 주의 말씀을 듣기 어려우니까 거문고 타는 자로 거문고를 타게 할 때 그 음률을 따라 성령이 감동시키니까 [개천을 많이 따라]는 말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맹숭, 맹숭한 가운데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이나 입만 달랑, 달랑하는 하는 방언이나 예언 등은 좀 수상한 점이 있습니다. 물론 영적인 사람들은 특별한 감정의 변화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도 하고 영적 교제가 가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감화와 감동이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더욱 확실하고 좋습니다. 성령의 감화나 감동은 너무너무 좋은 것입니다. 마음상태가 형언할 수 없는 좋은 상태가 됩니다.

 

사실 하나님을 만나면 그렇게 좋은 것입니다. 성령과 은사를 받고도 좋지 않으면 이상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은 아주 깨끗하고 순결한 감정의 끓어오름이라고 하겠습니다. 환희와 슬픔 혹은 평화 또는 의로운 의지와 결단 등이 나타납니다. 또 성령의 감동이 있을 때는 용기와 담력이 일어나고 보통 때 할 수 없는 짓도 할 수 있습니다. 남의 허리띠를 가져다가 자기의 수족을 묶는 것은 미친 짓 같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감동하시니까 스스럼없이 자신의 손과 발을 묶고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에서 이 띠 임자를 유대인들이 이렇게 결박하여 이방인들에게 넘겨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도 생긴 것입니다.

 

이런 성령의 감동은 아무 때나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깨끗하게 회개한 심려에 혹은 은사가 활발하게 나타나는 사람에게 기도 많이 하거나 성경 많이 읽고 연구하는 자에게 혹은 찬송 많이 부를 때, 금식할 때 흔히 나타납니다. 물론 뜻밖에 갑자기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은 성령께서 긴급히 하실 말씀이 있을 때 그러합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의 침체된 영혼이 성령의 감동으로 높게, 높게 고양되고 하늘 기쁨과 감정으로 끓어오르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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