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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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5758
2012.01.25 (18:49:56)

 

 

본문 : 20:22-27

제목 : 바울의 고별설교

설교 : 이남웅 목사(95.11.8 )

 

본문은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 지역의 교역자들을 불러놓고 한 마지막 설교의 내용입니다. 지난 시간에 바울사도는 자기의 목회 태도를 겸손으로 표현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겸손이란 외모적인 것보다는 성령으로 다루어져서 이루어진 것 즉 영적인 의미가 더 크다는 것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참다운 겸손이란 하나님의 절대 권력을 인정하고 그 권위아래 자기를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1) 첫째로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자가 교만한 자라고 했습니다.

14:1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하심 같이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자를 교만한 자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니 내가 있습니다.”즉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의 삶을 사는 자가 교만한 자입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하는 마음이 교만입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본주의가 교만이고 신본주의가 겸손입니다.

 

2) 둘째로 자기를 크게 생각하는 자가 교만한 자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기를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했고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다 했습니다. 또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늘에 가보니 하나님 계신 보좌 옆에 영광스러운 보좌가 있어 저 자리는 왜 비어있느냐고 물었더니천사장이 앉았던 자리인데 그가 타락하여 마귀가 되었기 때문에 자리가 비었는데 하나님께서 가장 겸손한 이태리 아시시의 성자 프란시스에게 주시려고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깨어나서 그것이 하도 인상적이어서 도대체 프란시스는 어떤 사람이기에 하나님께서 특별대우를 하시는가 하고 프란시스를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당신은 자기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 나는 세상에서 가장 흉악한 죄인입니다.]그런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이 세상에는 악인도 많고 흉악범도 많은데 어째서 수도하시는 당신이 가장 흉악합니까? 그것도 일부러 과장된 겸손이 아닙니까?했더니 아니요, 물론 이 땅에 흉악한 사람이 많지만 만약 그들이 내가 받은 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었다면 나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하드랍니다. 그래서 그는 [과연 프란시스는 위대한 성자다]라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크게 보여지는 마음은 사단이라는 병균에 의하여 영혼이 병든 상태이거나 귀신에게 집힌 상태인 것입니다. 성령 받으면 내가 작아 보이고 내 죄가 보이는데 마귀 집히면 내가 커 보이고 다른 사람이 부족해 보이는 것입니다.

 

131:1-2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접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어린아이 같도다.했는데 이것이 겸손입니다. 이와 같이 겸손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뢰하며 남을 나보다 났게 여기고 자기의 부족을 깨달으며 경건해야 합니다. 이 큰 덕을 사모하십시오.

 

3) 셋째로 바울은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20:31)] 교회를 섬기고 성도들을 목양함에 눈물을 흘리며 정성을 다하였습니다. 언제부터인지 기독교에는 눈물의 은사가 주어졌습니다. 성령이 임하시거나 회심이 일어날 때는 반드시 뜨거운 눈물을 동반하게 되어있습니다. 주님 자신도 눈물을 많이 흘리셨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뜨거운 감동과 함께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집니다.

 

그래서 눈물은 은혜의 표지가 되었고 성령임재의 확실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애통케 하는 영은 하나님의 영인 줄 압니다. 눈물은 감정에 쏟아 부으시는 성신의 은사인데 회개와 특별한 관계가 있고 감사와 감격과도 상관이 있습니다. 바울사도가 많은 눈물이 있었다 함은 주의 성신이 그와 늘 함께 그것도 충만히 거하셨다는 증거입니다. 눈물이 아무 때나 나오나요. 성신이 오셔야 나오지요. 우리 마음에 참 사랑과 충성이 일어나지 않을 때에라도 성신이 오시면 참 사랑이 일어나며 진실한 눈물이 쏟아집니다. 그래서 우리의 메마른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 같게 만드는 것입니다. 눈물이 많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 눈물은 거룩한 눈물이며 깨끗한 눈물입니다. 교회를 생각하니 눈물이 나오고, 성도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오고, 은혜 받지 못한 자를 생각하니 눈물이 나오고, 바울사도의 마음은 이렇게 사랑과 감동으로 늘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런고로 큰 회개와 눈물을 동반하고 오는 은사가 진짜입니다. 사람이 눈물을 흘릴 때는 진실해지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여러분의 눈에 눈물이 마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4) 넷째로 바울은 시험을 참고 주를 섬겼습니다.

여러 가지 괴로운 일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나 유대인에게 40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거짓 형제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해야 염려하는 것이라(고후11:23-28)이런 여러 시험과 고난을 잘 참아 견디었습니다. 그러니까 죽을 때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딤후4:7-8)했습니다. 시험을 참을 때 영광입니다. 시험에 지는 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시험에 강한 여러분 도시고 넘어지지 마십시오. 뜨거운 눈물과 참된 겸손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러나 지금까지 온갖 시험을 참고 왔지만 지금 바울사도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고 있습니다. 심령에 매임을 받았다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확정되었다는 것입니다.

 

5) 다섯째로 심령에 매임을 받아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바울을 봅니다.

마음속에서 예루살렘으로, 예루살렘으로 누군가가 끄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급히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을 앞당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때때로 성령께서는 자기의 종들이나 자녀들에게 마음에 압박을 가하시며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는 -결코 가면 좋은 일이 없는 예루살렘으로 이끌리고 있었습니다. 심령이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그것도 성령의 역사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종의 강박관념 같은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옛날 1980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내 속에서 역사하시던 성령께서도 똑같이 내 심령 속에서 부천으로, 부천으로 하는 생각을 집어넣으신 것입니다. 아무 연고도 인연도 없는 이 도시에 외롭고 적막하지만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큰 목회의 비전을 가지고 있는 나를 몰아넣으신 것입니다. 부천에다 교회를 세워야할 것 같은 생각이 계속 일어난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교회를 어디에다 건축해야할지를 확정 못 했을 때 하나님께서 어느 아침 문득 중동 신도시라는 깨달음을 주시고는 막연한 그 생각에 2년을 사로잡히게 하셨습니다. 그러더니 과연 중동 신도시 관문에 좋은 터전을 주셔서 중동 성전시대를 열게 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자기의 뜻을 계시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선한 생각이 끝없이 떠올라 사라지지 않으면 그것이 성령으로, 심령이 매인 것입니다. 그 반대의 생각을 하면 편치도 않고 만족되지도 않습니다. 아무쪼록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을 계시하시고 성령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인도라면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 해도 목숨이라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는 마음으로 바울은 지금 가고 있습니다. 뻔히 고난이 오는 줄을 알면서도 심령에 매인 바 된 것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사명을 느끼고 먼 사역의 길을 갑니다.

 

신학생들이 선을 볼 때 여자들에게 으레 하는 말이 [고생할 각오가 되었습니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처녀들이 [물론-주님을 위해 온갖 고생 다 견디겠습니다.]하고 결혼하지만 결혼 후 개척교회하고 한 십년 고생하면 그때부터는 고생이 싫어지고 남편이 무능해 보이고 바가지를 긁기 시작합니다. 이래서 목회자의 가정에 불화가 싹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님, 나는 오늘부터 모든 것을 버리고 일편단심 주 만 위해 살아가겠습니다. 주님위해 나는 살고, 주님위해 일하며, 주님위해 고생하고 주님위해 죽겠습니다.했지만 너무나 각박하고 무서운 가난과 현실 앞에서 목회를 못하겠다고, 하지말자고 하기도 합니다. 불쌍하고 가난한 목회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결론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이 없는 마음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중심으로 사십시다. 뜨거운 눈물과 성령의 감화하심이 늘 떠나지 않기를 바라고 온갖 시험을 참고 성령에 매인바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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