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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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20:18-24

제목 : 내가 어떻게 행한 바를 너희도 아는 바라.

설교 : 이남웅 목사

 

 

바울사도는 밀레도에서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어 장로들을 모았습니다. 밀레도는 유두고가 떨어져 죽은 드로아에서 한참 남쪽으로 떨어진 항구였습니다. 바울일행은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려고 급히 가기 때문에 에베소에는 미처 들리지 못하고 밀레도에 도착한 것입니다. 에베소 일대의 각 교회 지도자들은 바울의 초청에 응해서 밀레도로 모여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들 앞에서 바울사도가 한 설교내용입니다. 설교라기보다는 부탁이었습니다. 아시아 일대 교회의 아버지인 사도의 마지막 눈물어린 당부의 말씀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고별설교는 아시아 지역에서 자기가 어떻게 복음을 위하여 수고했는가에 대한 회상과 장로들에 대한 부탁과 장차 아시아 교회들에 나타날 일에 대한 예고의 말씀이었습니다.

 

1) 첫째로 바울은 겸손으로 주를 섬겼다 했습니다.

그의 목회태도가 지극히 겸손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태도가 겸손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생각하기를 겸손은 외형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외적인 것 보다 마음의 상태를 더욱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교만한 마음을 미워하시고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쓰시지 않습니다. 주님이 안 쓰시는 종들을 보면 큰 교만이 숨어있는 것을 봅니다. 물론 겉으로는 굉장히 겸손해 보이기도 합니다.

 

어린 사내아이가 가슴을 딱 펴고 손을 허리에 놓고 [내가 제일이다]하면 어른들이 오히려 귀여워합니다. 그러나 나이 먹은 어른이 마음에 교만이 넘쳐서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기 밖에는 없는 척 재고 다니면 사람들이 마음에 기분 나빠하고 미워합니다.

 

(1) 하나님 없는 자가 교만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말하기를 하나님이 없다하도다한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가 교만 하는 자입니다. 이와 같이 마음이 높고 교만한 자를 성령께서 미워하시고 교만한 자는 꺾어버리십니다. 저 바벨론 영광의 도성을 바라보며 왕궁 옥상에서 느브갓네살 왕이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하고 참으로 교만한 말을 했을 때 당장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느브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4:31)]했습니다.

 

그 후 그는 미쳐서 7년 동안 들짐승과 함께 지내며 소처럼 풀을 먹고 지내다가 회복되어서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이제야 겸손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마음의 상태가 교만입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하는 마음이 교만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일하지 않는 것이 교만의 으뜸입니다. 하나님도 없는 자들이 까불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죽을병이 들어서 삼각산에 올라가서 기도하는데 죽을까봐 쉴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하루 22시간 씩 4개월을 기도하다가 은혜를 받고 병이 떠났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세상에서 제일 교만하다]고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내가 왜 제일 교만합니까?] 했더니 [하나님의 도움 없이 제 힘으로 살려고 하는 게 교만이며 그래서 기도하지 않은 게 제일 교만하다]고 가르쳐 주시더랍니다. 그 이후 그분은 굉장한 기도의 능력을 받았습니다. 탕자처럼 내 몫을 챙겨서 아버지 떠나서 혼자 살려는 마음이 참된 교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에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아뢰고 의지하며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이나 기도하는 가정이나 기도하는 교회나 기도하는 백성은 결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2) 둘째로 자기를 크게 생각하는 자가 교만한 자입니다.

높이 되길 원하던 한 영광 있는 천사가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눈을 깜빡이며 생각했습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14:13-14하나님 같이, 하나님처럼, 얼마나 좋을까? 하다가 결국 마귀가 되었습니다.

 

다른 천사들 위에, 높은 곳에, 가장 높은 구름위에 그리고 지극히 높은 분 하나님과 비기려는 그 높아지려는 심보가 마귀되기 전의 루시퍼 천사장의 마음이었습니다. 그 교만 때문에 마침내 하나님께서 내려쫓으시고 저주하시니 마귀가 되었습니다. 자기가 가장 높은 듯 여겨지거든 귀신 지핀 줄 아십시오. 아니면 마귀 들어오기 직전의 위기일발의 순간입니다.

 

성령 받으면 내가 작아 보이고 내 죄가 보이는데 마귀 집히면 내가 커 보이고 다른 사람의 부족이 보입니다. 그리고 교회 같으면 마귀가 하나님과 비기려 한 것처럼 목사님과 비기려고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들과 맛 비기려는 것은 마귀의 교만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마음이 낮은데 처하고 말이 겸손하고 행동이 근실합니다.

 

131:1-2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내 중심이 젖 뗀 아이 같도다! 했습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이와 같이 겸손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뢰하며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자기의 부족을 깨달으며 경건합니다. 이 큰 덕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2) 둘째로 바울은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20:31] 교회를 섬기고 성도들을 목양함에 눈물을 흘리며 정성을 다하였습니다. 언제부터인지 기독교에는 눈물의 은사가 주어졌습니다. 아니 구약시대부터 있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거나 회심이 일어날 때는 반드시 뜨거운 눈물을 동반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자신도 눈물을 많이 흘리셨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뜨거운 감동과 함께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집니다. 그래서 눈물은 은혜의 표지가 되었고 성령 임재의 확실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애통케 하는 영은 하나님의 영이신 줄 압니다. 눈물은 감정에 쏟아 부으시는 성신의 은사인데 회개와 특별한 관계가 있고 감사와 감격과도 상관이 있습니다.

 

바울사도가 많은 눈물이 있었다함은 주의 성신이 그와 늘 함께 그것도 충만히 거하셨다는 증거입니다. 눈물이 아무 때나 나오나요. 성신이 오셔야 나오지요. 우리 마음에 참 사랑과 충성이 일어나지 않을 때에도 성신이 오시면 참 사랑이 일어나며 진실한 눈물이 쏟아집니다. 그래서 우리의 메마른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 같게 만드는 것입니다. 눈물이 많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 눈물은 거룩한 눈물이며 깨끗한 눈물입니다. 교회를 생각하니 눈물이 나오고 성도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오고 은혜 받지 못한 자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오고- 바울사도의 마음은 이렇게 사랑과 감동으로 늘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런고로 큰 회개와 눈물을 동반하고 오는 은사가 진짜입니다. 사람이 눈물을 흘릴 때는 진실해지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여러분의 눈에 눈물이 마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3) 셋째로 바울은 시험을 참고 주를 섬겼습니다.

여러 가지 괴로운 일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뻔 하였으나 유대인에게 40에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거짓 형제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해서 염려하는 것이라(고후11:23-28)이런 여러 시험과 고난을 잘 참아 견디었습니다. 그러니까 죽을 때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딤후4:7-8)했습니다.

 

시험은 참을 때 영광입니다. 시험에 지는 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시험에 강한 여러분 되시고 넘어지지 마십시오. 뜨거운 눈물과 참된 겸손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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