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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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3 (18:02:13)

무국적 카렌족 쎄포의 장례식

 

오늘 참석한 장례식은 어느 때보다 생각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버마의 카렌반군 지역에서 살다가 예기치 않은 사고를 당해, 그곳에서 수 백 키로 떨어진 태국북부지역의 묘지에 묻힐 수 밖에 없는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금요일 아침 신학교에서 예배를 마치고 난 뒤 한 교수가 광고를 한다.

사고를 당한 버마 국경의 카렌 주민이 우리 학생들이 가서 헌혈을 하여 도와주었지만, 결국 어제 목요일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어제 노회장인 싱콘 목사가 오늘 토요일에 장례식이 있어서 같이 갔으면 하였다.

 

장례가 진행된 곳은 태국의 한 시골의 기독교 묘지였다.

조금 늦게 도착하였지만, 30여명의 조문객들과 가족들이 모인 단출한 장례였다.

 

왜냐하면, 망자가 버마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태국에는 전혀 연고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를 모르지만, 치앙마이에 사는 카렌기독교인들이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참여한 것이다.

 

장례식을 끝내고서야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10여일 전쯤, 이 부부와 몇 명이 소를 방목하기 위하여 가던 중 변을 당하였다.

카렌반군이 매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뢰를 이 주민이 밟은 것이다.

그 지뢰는 파괴력과 충격이 매우 큰 지뢰였는데, 그 자리에서 이 주민은 두 다리가 잘렸고, 상체에도 심각한 상해를 주었다.

같이 옆에 가던 부인과 다른 이도 피해를 당했지만 심하지 않았다.

 

급하게 배와 차를 이용하여 태국국경의 매사리앙 병원에 후송하였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어떻게 할 상황이 못되어, 치앙마이에 있는 제법 규모가 있는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며칠 동안 살아 있었으나, 상해가 너무 심해 결국 지난 목요일에 사망한 것이다.

쎄포 라고 하는 주민의 무덤을 보니 1964 1월 출생하였고 2012 6 21일 주님품으로 갔다고 한다.

47세의 길지 않은 인생을 살다 갔다.

평생을 무국적으로 살다가 그의 마을에도 묻히지 못하고 태국의 북부지역의 시골묘지에 묻혔다.

 

참석한 식구들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부인과 여섯명의 자녀들이, ‘사랑하는 부인과 아이들로부터라는 화환을 들고 마지막 길을 보낸다.

앞으로 사랑하는 남편과 아버지의 무덤을 찾는 것이 이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국적이 없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최근 버마의 상황이 급변하면서, 평화의 분위기가 계속되면 이들도 당당한 버마의 시민으로 평화롭게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소망이 있는 것은 쎄포 라는 이 카렌족은 영원한 나라의 시민으로 살고 있고, 앞으로 그 나라에서 만나겠지만, 그 때까지 경험하여야 할 삶이 쉽지 않다.

 

남아 있는 식구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큰 아들이 난민촌에 있는 신학교 1학년에 다닌다고 하는데, 등을 쓰다듬어 주는 것 외에는 할 일도 없었다.

 

우리는 한국국적을 가지고 외지에 살고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 주위에 그렇지 못한 이웃들이 적지 않다.

영원한 나라의 시민권으로 살아가지만, 이 땅의 시민권도 필요하다.

영원한 시간에 비하여 우리의 인생이 길지 않지만, 그 시간에 담당하여야 할 몫이 쉽지 않다.

예기치 않은 지뢰폭발로 가장을 잃은 가족의 슬픔의 자리에 시민권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맴돈다.

왜냐하면 앞으로 이들은 아버지와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채워줄 태국 북부지방의 무덤의 방문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영원한 소망으로 채워지길 기대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의 질고를 짊어지시고 그렇게 사셨던 주님의 위로를 진심으로 소원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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