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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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1990.10.7(주낮)

본문 : 고전 4:6~8

제목 : 고린도 교인들의 교만

 

인간이 일단 교만에 빠지게 되면 분별력을 잃고 자기중심의 편협한 인간으로 퇴화하기 시작합니다. 교만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6, 7가지 죄악 중에 으뜸 되는 악입니다. 교만은 자기가 커져 보이고 위도 아래도 잘 안보이는 것으로서 심지어는 하나님도 안보일 경우가 있어 교만 마귀에 들리면 스스로를 하나님이라 칭하기까지 합니다. 마귀가 저주를 받고 쫓겨난 것은 교만이라는 병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미워하십니다. 그래서 이런 자는 성도의 회중에서 쫓아내야 다툼이 쉰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잠 29:23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하셨으며 또한 야고보도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 했고(4:6) 베드로 사도도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 하신다(벧전 5:5) 했습니다. 또한 시 94:2세계를 판단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에게 상당한 형벌을 주소서했습니다. 교만 병은 영적인 불치의 암과도 같아서 천지간에 교만한자가 설 곳이 없습니다. 오직 교만은 패망의 선봉일 뿐입니다. 그래서 교만한 마음은 절대로 키워서는 안됩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8:14), 자긍하고(대하 25:19) 저주를 받으며(119:21) 교만한 자는 입으로 매를 자처하며(14:3) 교만한 자는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고(딤전 6:4) 교만한 것은 죄이며(21:4) 큰 화를 가져오는 대 죄입니다. 그러므로 렘 13:15교만하지 말찌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하셨습니다. 교만한 자들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양보를 모릅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90여년쯤 되었는가 동촌에 사는 임가집과 서촌에 사는 윤가집이 한날에 잔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신랑이 좁은 길에서 만나면 먼저 피하지 않는 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집 신랑이 길에서 서로 만났습니다. 그들이 오전 9경에 길에서 만나서 양보하지 않기를 오후 4시까지 그대로 말을 탄 채로 서 있었습니다. 이때는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이 부는 정월 그믐께인데 윤씨집 신랑은 나이먹은 신랑으로 재취하는 결혼식이요, 임씨집 신랑은 열두살 먹은 새서방이었습니다. 어린 소년이 무려 7시간이나 찬바람을 맞으며 서 있으니 얼마나 춥겠습니까? 그만 뻣뻣이 얼어서 오후 4시경에 죽고 말았습니다. 양보를 모르는 양반들의 교만이 결국 죽음으로 이끈 것입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교만한 영혼은 영적인 죽음으로 끝마치게 됩니다. 그러니까 성도가 이 병에 걸려서는 안됩니다. 약이 별로 없는 난치병입니다. 모든 분쟁은 이 마음이 교만한 자들 때문에 일어나는게 대부분입니다.

지금은 목사님이 되신 박정규 목사님 옛날 얘기입니다. 청년시절에 똑똑하고 공부 잘하고 구원론도 깨닫고 성경도 잘 아는 것 같아서 스스로 상당히 굉장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떤 부흥회에서 기도를 받는데 기도 내용이 기지도 못하는 것이 날으려고 한다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만 그 말씀에 그가 깨어졌습니다. 자기는 훨훨 창공을 날아다니는 수준 높은 신자인줄 알았는데 하나님 보시기에는 기어 다니지도 못하는 유치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때 회개하고 은혜 받고 지금은 훌륭한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찌 한 두 사람이겠습니까? 위장이 아픈 사람은 위 투시를 해봐야 하는 것처럼 교만이 침투하지 않았는가 스스로 마음을 투시해 봐야 합니다. 7년 전인가 8년 전인가 우리교회 개척시기에 서울 남문 교회인가 영락교회인가 하는데서 남자 집사 한 사람이 날 찾아 왔습니다. 서른 37쯤 되었지 않았나 합니다. 그런데 이 남자 집사가 얼마나 교만스러운지 물론 은혜 체험은 있었지만 그리고 안양성결교 신학교인가를 좀 다니다 말았다는 것 같았습니다. 하여튼 그래서 그런지 한눈에 이건 생퉁이가 왔구나썰팅이 혹은 생퉁이란 말이 무슨 뜻 인고 하면 어느 지방 말 인지는 모르나 우리 교회서는 깨지지 않은 초보자를 상징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마 그때 구원론도 제대로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가르치고 신경을 좀 썼는데 그 교만기가 쉽게 지워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세월이 점점 흘러가면서 그가 겸손한 자가 되어 가는데 지금은 옛날의 그 풋기가 거의 사라져 버렸습니다. 점점 낮아지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지요. 그 사람이 누군고 하면 목포 혜린교회의 윤창현 전도사님입니다. 이렇게 참된 성도라면 무르익은 곡식이 고개를 숙이듯이 세월이 흘러 갈수록 점점 겸손해 져야 하는데 오히려 어떤 사람은 세월이 갈수록 반대로 점점 더 높아져만 갑니다. 점점 더 교만스러워 간다 이 말입니다. 불치의 병 죽음 아니면 불행을 가져오는 교만 암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특히 사역자들이 이 교만 병에 걸리면 버림을 받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지도자급에 있는 자들이 이런 교만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대적하여 싸웠습니다. 본문 6절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한 것이 이 교만한 자들 때문에 하신 말씀입니다. 교회를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지 자신의 신분이나 직위나 은사나 능력을 이용하여 결코 자기를 나타내거나 분열을 조장하거나 성도들 위에 군림해서는 안됩니다. 참다운 영적 지도력은 군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힘이 배경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헤드십과 리더십이 구별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인간적 권위주의를 절대 배격해야 합니다. 그런 것은 사탄적인 것이지 하나님이 절대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이 헤드십이라는 권위주의는 유아독존형식이요 자기가 높아지고 독재를 하게 되고 성도를 억압하고 괴롭게 하고 자기맘에 들지 않으면 상처를 입히고 해를 끼치려 합니다. 성도를 무서워하지 않는 주의 종들은 철없는 자들이요, 큰일을 그르칠 자들입니다. 만약 반발이 일어나면 자기가 죽고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참된 영적 지도력은 지도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하게 주장하고 영력과 영권과 참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권위입니다. 그래서 나를 따르라가 아니라 하나님을 따르라 그 말씀을 따르라로 나타나고 그 주장하는 바가 대의명분에 맞고 백성이 즐거운 마음으로 따르고 은혜를 받습니다. 물론 이런 지도자에게는 교만한 마음이 없습니다. 진심으로 자신의 부족함과 아무것도 아님을 알고 주를 높이고 찬양합니다. 주의 종들에게 주신 권세는 파하고 해치려 하고 자기를 주장 하려는게 아니고 세우고 싸매고 건설하고 주님을 주장하려고 주신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평신도 지도자들 중에 교만한 자들이 많이 있어서 싸움과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어이가 없어 이 말씀을 기록한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과 사역자들은 인본적이고 사탄적인 권위주의를 버리고 섬기는 자세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참다운 존경과 사랑을 받고 거기서부터 참된 권위가 오게 됩니다. 영적지도력과 교만한 권위주의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독일의 한 물리학자는 자신의 책상위에 해골 두 개를 올려놓고는 그 위에 구멍을 뚫어 촛대를 꽂아두었습니다. 그리고 밤마다 그 촛불 밑에서 연구를 하면서 언젠가 나도 저렇게 될 것을 생각 하면서 자신을 낮추었다 합니다. 우리도 이 뼉대기와 살로 이루어지고 해골바가지만 남을 자신을 자랑하고 자고해서는 안됩니다. 너 자신을 알라 하신대로 주제파악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고린도 교인들의 자고하고 교만했던 모습을 책망하며 겸손을 권하는 말씀과 풍자를 통하여 저들의 어리석음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1. 첫째로 그들은 영적으로 교만했습니다.

8절에 너희가 이미...... 우리 없이 왕노릇 하였도다그들이 이미 천년왕국시대의 영광에 참예하여 이라도 된 것처럼 교만히 행했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가장 낮은 자리에 있어 약하고 비천하고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수고하며 친히 일을 하며 온갖 핍박 비방을 당하며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기 같이 되어 복음전도에 진력하고 있는데 이자들은 편히 앉아서 교만하며 싸움질이나 하고 왕처럼 교회위에 군림하며 패싸움이나 하고 있었습니다. 그 원인은 저들의 마음속에 있는 왕의식 즉 왕적교만때문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왕이라도 된 것 같은 자기도취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철부지들의 어른 흉내 내는 영적장난은 많은 폐혜와 물의를 교회 내에 일으키게 됩니다. 우리는 때가 되기까지 늘 근신하고 뭄을 움츠리고 조심해야 합니다.

 

2. 둘째로 그들은 자랑하는 자들이었습니다.

7절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 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하신 말씀이 이 교만한 자들이 크게 자랑하는 죄가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교만, 자고, 자랑, 자만 이것들은 다 통하는 면이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 중에 여러 은사와 능력과 지혜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잊었습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을 잊게 됩니다. 하나님을 자랑하고 선전해야 할 사람들이 사람 자랑이나 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허탄한 자랑은 죄악입니다. 입에다 자갈을 물려야 합니다. 이놈의 입과 혀가 얼마나 죄를 범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어떤 목사님은 침묵을 위해 자갈을 9개월이나 물고 있었다합니다. 그러니 말을 많이 못하니 그런 죄를 피할 수 있습니다. 자랑이 뭐냐 자기 나타내는 말버릇 행동 생각 이런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주 예수님을 어떻게 자랑할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3. 셋째로 그들은 분수를 몰랐습니다.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를 예를 들어 본을 보이고 고린도 교인들이 이를 본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분들은 충분히 본받을 만한 분들이었고 배울만한 점들이 많은 분들이었습니다. 이 사도들은 자신의 것들은 거의 다 분토처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주예수의 증인이 된 분들이었는데도 저 교만한 자들은 배우려 하지를 않아서 온 교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겸손과 섬기는 것을 경시 했습니다. 6절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노니 이는 ......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한 말씀 속에 바울의 심사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교만한 자들이 배우려 하나요, 배워야 고치는데 배우지 않으려 하니 진보가 없습니다. 사도가 보기에는 아직 육에 속한 자들이요, 어린아이들이요, 영의 영자도 모르고 능력도 없는 것들이 영적교만에 빠져 허황한 자랑을 일삼고 싸우며 교회 분위기를 망치고 있어서 그 한계점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 4:18-21절에 우리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 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노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고린도 교회의 분쟁을 유발하는 교만한 자들을 더 이상 방치 할 수 없게 되어 불가불 사도의 권세로 알아보고 치리하지 않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고치고 회개치 아니하면 매를 맞아야 할 자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의 말씀으로 이 고린도서가 쓰여졌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이 뜨끔거리고 부딪치는 사람이 있거든 스스로를 낮추고 회개해서 고린도 교인들이 빠졌던 교만의 함정으로부터 벗어나 변화 받고 참 은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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