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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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1990.9.23(주낮)

본문 : 고전 3:16~17

제목 : 성전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본문의 말씀을 뜻으로 살펴보면 주제가 성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성전이냐 하면 너희라고 표현된 교인들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성전은 무엇이냐? 하는 문제도 나옵니다. 거기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곳이 곧 성전이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어떤 건물 안에 거하시면 그 건물이 성전이 되어 지고 사람의 마음에 거하시면 그 사람이 성전이 됩니다. 그런고로 하박국 2:20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어다했습니다.

셋째로 성전은 거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더러우면 안됩니다. 이것은 건물성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아름답게 짖고 깨끗게 하고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 안에 주의 영이 거하시니까 온갖 쓰레기 같은 더러운 죄가 청소되고 수리 되어야 합니다. 성전이 성결하고 거룩해야 하는 것은 지엄하신 주의 엄명입니다. 그것이 깨지면 멸망됩니다. 건물교회나 성전도 그러하고 사람도 그렇습니다.

 

1. 성전에는 성령이 계셔야 합니다.

성령이 떠난 교회나 신자의 마음은 주인이 떠나고 비어서 황폐되어가는 집과 같습니다. 요즈음에는 시골에 빈집이 많이 생기고 있다 합니다. 사람들이 농촌에서 살기 어렵고 자녀들 교육 문제도 있고 하니 다들 보따리 싸가지고 서울로 이사를 와서 농촌 인구의 급격한 감소가 이루어져 겨우 6,700만 정도가 농촌을 지키고 있습니다. 모든 젊은이들은 다 떠나고 늙은이들만 남아서 인력난이 극심합니다. 땅도 누가 사는 사람이 없으니 그냥 두고 떠나고 집도 살 사람이 없으니 내박쳐놓고 오니 12년 지나고 나면 퇴락해 버립니다. 지금 우리나라 농촌 주택들은 대게 3, 4050년 전의 옛 흙벽돌이나 흙집에다 지난 70년대의 새마을 운동 등 영향으로 벽만 회로 칠하고 스레트나 기와를 올린 것들이 대부분이고 현대식 주택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그것들이 다 퇴락해 가고 있습니다. 농촌의 구조가 지금 혁명적인 변혁기를 맞고 있어서 그 문제가 해결 되어야 선진국으로 완전히 진입해 들어갈 것입니다. 지금 한국의 농촌이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10년쯤 지나고 나면 나름대로 한국식 선진 사회의 한 부분으로 정비되겠지요. 이렇듯 주인이 떠나버린 빈집이 퇴락하고 황폐해지는 것처럼 성전도 주인이신 성령이 계시지 않으면 황폐해 지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성령이 떠나 버리시면 그 교회는 버림을 받습니다. 겉모양은 혹 남을지라도 영적으로 버린바 된 상태에 있게 됩니다. 주인이 떠나고 나니 객이나 불량배들의 소굴이 됩니다. 인본주의로 둔갑한 사단의 무리가 교회정치와 모든 것을 주관합니다. 영으로는 귀신과 마귀들이 떼를 지어 들어와 삽니다. 우리 성도의 마음에는 성령께서 계셔야 합니다. 그분을 모셔 들여야 합니다.

구원 문제는 이미 성령의 믿게 하심을 따라 해결 되었습니다. 그게 아니라 항상 함께 하여 역사하시고 도와주시는 성령의 임재가 있어야 합니다. 엄마를 잃어버린 애기의 마음은 어떤 것으로도 즐겁지 않습니다. 그래서 엄마 찾아내라고 우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속에 거하시면 우리 마음이 기쁘고 평안합니다. 즐거워요. 허무하지도 않습니다. 젖먹는 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 만족한 것 같고 염려 없이 깊이 잠든 것 같은 평화가 심령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에게서 그 분이 떠나시면 좋은게 없어집니다. 허무합니다. 괴로워집니다. 세상적으로는 부족한게 없어도 만족이 없어요. 그래서 다윗은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걷어가지 마시고한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마음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성령의 은혜가 걷혀지지 않도록 늘 조심하고 근신해야 합니다. 병에다 술을 넣으면 술병 되고 기름 넣으면 기름병 되는 것 같이 우리 속에 성신이 거하시면 거룩한 성전이 되고 마귀가 거하게 되면 신당 즉 마굴이 되어 버립니다. 귀신의 소굴이 됩니다. 성령이 우리 속에 거하시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있으나 마귀 귀신들이 우리 속에 들어있으면 공포와 불안과 떨림과 허무가 있고 절망과 낙심과 저주가 따르며 전적으로 부패된 우리 마음속에서 악한 생각들이 솟구쳐 오르는데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하는 짓이 예절에 어긋나고 포악함)가 나옵니다. (7:21-22) 그런고로 우리는 성령님을 거스리면 안됩니다. 성령을 소멸하면 허무귀신이 찾아와 엄마를 길거리에서 잃어버린 애기에게 좋은 것이 없는 것 같이 생의 모든 것이 의미를 잃고 허무해 집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부활하신 주님께서 성령을 받으라(20:22) 하셨고 바울도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5:18) 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오셔서 첫째로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사 내적인 속사람을 강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되게 하시고 즉 착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둘째는 여러 권능을 주셔서 주님 일하는데 큰 능이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무능하던 자가 강해지고 맹열한 불이 일어납니다. 이분은 영원하신 우리의 스승이시며 보혜사가 되시고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 은혜와 은사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은 충만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2. 둘째로 성전은 거룩해야 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신이가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성전에 성령이 계시니 당연히 거룩함이 성도의 본분이 됩니다. 이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 영과 육의 피어린 격투와 싸움이 벌어져서 우리 의지가 곤란을 당합니다. 디도서 2:11-14에 보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심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을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다했고 또한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했습니다. 이것이 거룩한 생활입니다.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이 되게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생활 속에서 마음과 생각 속에서 우리의 말 속에서 행동 속에서 하나님 중심의 경건함과 말씀이 드러나야 합니다.” 이것이 거룩한 생활이요, 성화인데 여기에 이르는 길은 지름길이 없고 피어린 싸움과 십자가를 지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 밖에 왕도가 없습니다. 영혼의 씻음과 거룩함을 위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성결함을 위하여 성령 안에서의 회심을 시작으로 하여 계속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성령을 거스려 행하기 시작하면 떠났던 마귀가 되돌아옵니다. 마귀는 희귀성이 있습니다. 되돌아오는 성질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집착성이 있습니다. 한번 쫓겨나고 나면 포기하지 못하고 다시와 보고 다시와 보고 하면서 기웃기웃 거립니다. 마음의 문이 열렸을 때는 지체 없이 우리 몸속에 다시 침투해 들어옵니다. 12:43-45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하셨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서 귀신이 사람 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도 들어가고 생각계통에도 들어가고 몸속에도 들어가서 병을 일으키기도 하고 둘째는 들어올 뿐 아니라 또한 나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어갔다 나갔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일이지만 아담과 하와가 마귀에게 굴복한 이후로 이런 종속적인 영적인 악습이 인간을 괴롭혔습니다. 들어가기도 하고 또 나가기도 할 뿐 아니라 셋째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기도 합니다. 강한 집착력을 가진 것입니다.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했습니다.

북양의 연어가 새끼 때 살던 강원도 산골강으로 수년 만에 다시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이런 성질이 있는 물고기를 휘귀성 어족이라 합니다. 마귀도 한번 들어갔다 나온 사람 속을 그리워하고 되돌아와서 사람을 괴롭힙니다. 넷째로 귀신도 집이 있는데 즉 거처가 있는데 그것은 사람속이라는 것입니다. 몸속에 집을 지으면 그 부분이 병들고 마음속에 집을 지으면 그 마음의 부분이 병들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우리 속에 집을 못 짓게 해야 합니다. 무허가 건물 짓듯 사단이 들어와 자리 잡지 못하게 경계하고 집이 이미 지어졌으면 그 귀신의 집을 파괴해 버려야지 비고 소제되고 수리만 해 놓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다시 돌아올 때 와서 살기가 더 좋아집니다. 저보다 악한 귀신 7을 데리고 왔습니다.

다섯째로 사람의 몸속에 귀신이 복수로 즉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귀신들의 패거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장도 있어요. 이 말씀 속의 패거리의 대장은 처음 있던 놈이겠죠. 귀신들은 장소가 아무리 협소해도 그런 것을 구애받지 않습니다. 7귀신이 들어갔습니다. 그러니 그 사람의 형편이 7배나 더 악해졌습니다. 귀신의 복수화 현상 귀신도 동무가 있어요. 같은 귀신 즉 동질의 귀신이 들어가 역사하면 사람들의 친구도 비슷합니다. 즉 도둑놈은 도둑놈끼리 모이고, 도박꾼은 도박꾼끼리 모이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영적 세력들에 대하여 아주 취약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성령이 떠나시고 나면 마귀가 들어옵니다. 돈 귀신, 연애 귀신, 사지 귀신, 교만 마귀, 분쟁 마귀, 등등 악하고 더러운 것들이 저항 없이 뛰어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거기는 성전이 아니라 마궁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마음의 주인은 성령님이 되셔야 합니다. 그 분 더 강하신 주께서 우리 속에 계시면 사단이 우리를 만지지도 못합니다.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우리를 지키실 때 이런 역사가 나타나서 우리는 나 두렴 없네하고 찬송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죄가 있고 회개치 않고 거스리는 사람에게서 떠나십니다. 성령이 떠난 마음은 귀신에게는 비고 소제되고 수리된아주 살기 좋은 터가 됩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고 마귀에게 거점을 기회를, 틈을, 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론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인 우리 몸을 더럽히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은 성령의 전이 될 수도 있고 마귀의 소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인간의 속에는 1개 군단의 큰 무리의 군대 귀신이 즉 귀신의 한 부대라도 들어가 있을 수 있으며 7귀신도 들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영들이므로 얼마든지 떼를 지어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 엘리사를 구원하러 아람군대를 막으러 온 하늘의 불 병거와 불 수레와 천사들의 군대의 수는 엄청났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여호와의 사자들이 들러 진을 친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위기를 당하셨을 때 내가 12영 더 되는 천군을 출동시킬 수 없을 줄 아느냐 하셨으니 기왕이면 12개 군단도 더 되는 하늘의 사자들이 여러분을 지키고 주의 셩령이 함께 하시는 위대한 하나님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말씀 따라 사는 성도가 이런 은혜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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