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행 7:39-43
제목 : 이스라엘의 반역
설교 : 이남웅 목사 (95.6.11 주.낮)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노예로서 종노릇 하는 것을 보시고 모세라는 선지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해내셨습니다. 수 없는 능력과 기사가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하여 나타났었고 홍해바다가 갈라지고 사막에서 낮에는 큰 구름이 하늘을 덮고 앞서 인도하며 밤에는 하나님의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먹을 것이 없는 백성에게는 하늘 양식인 ‘만나’를 아침마다 내려주셨습니다. 또 고기가 먹고 싶을 때는 ‘메추라기’떼를 몰아다가 싫건 먹이셨습니다. 먹을 물이 없어서 아우성 칠 때는 반석에서 땅속 깊은 곳을 흐르는 생수를 끌어내어 마시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나안 땅의 안식을 약속 하시사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을 주신다 하였건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끝까지 성령을 거역하고 근심케 했습니다.
이것은 비단 송아지 우상사건만이 아니라 전 광야생활에서 끝없이 반복되던 모습이었습니다. 왜 저들이 이와 같이 되었습니까?
1) 사라지지 않는 노예근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몸은 애급을 떠났으나 마음은 아직 거기 있어서 완전히 옛 생활과 생각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떠나면 잊어버려야 마땅한 것인데 400년 동안을 노예생활 하던 그 뿌리 깊은 노예근성이 쉽게 사라지지 않은 것입니다. 애급의 양파와 마늘과 풍습을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그리워하며 회상하곤 했습니다. 과거는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끄는 매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옛날을 그리워합니다. 그것이 세상을 상징한 애급이었을 때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옛것을 벗어버리고 새것이 되는 것이며 옛 생활을 청산하고 새롭게 변화를 받아 세상이 아닌 하늘을 향하여 사는 종교입니다. 일단 도에 입문하는 순간부터 과거는 잊어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과거는 세상과 육신과 죄와 마귀가 중심되어 사는 생활 입니다. 그러나 우리 육신의 생각이 아직 남아있어 이토록 우리를 번뇌케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서 롯의 아내처럼 자꾸만 뒤를 돌아다보게 됩니다. 옛날의 생활이 노예였을지라도 그 노예적 세상 생활을 즐거워하는 맘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생각지 않습니다. 아직 가나안 땅에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광야생활이 고달플 때 마다 옛날의 애급을 생각하며 하나님과 모세로 더불어 충돌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옛 생활이 그리울 때가 있지요. 한잔 마시고 즐거워하던 그 순간이 그립고 거침없이 육체의 원하는 대로 행하며 즐겨 살던 옛 생활이 잊혀 지지 않아 여러분의 영혼이 갈급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도 지나가고 그 정욕도 지나간다는데 영육의 갈등은 여전히 계속되는 싸움입니다. 저 천로역정의 기독교도는 세상을 떠나서 그 풍속과 사람들을 떠나서 가족과 이웃 사람들의 애원이나 부르는 소리도 귀를 막고는 영생, 영생하며 좁은 문을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우리 육체와 세상은 잠깐이지만 영혼의 세계는 영원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동안에 그 나라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은혜 풍성하신 구세주 예수의 귀한 음성 듣는 대로 나가는 나의 몸, 승전가를 부르는 날 주 앞에 설 때에 하나님의 크신 능력 찬미를 부르리.」 아멘 - 잊혀 지지 않는 과거의 세상생활과 애급의 즐거움을 외면하고 승리하며 달려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뒤를 바라보던 ‘롯’의 처는 사해의 소금기둥이 되었고 애급을 그리워하던 이스라엘은 다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천성을 향해 가는 우리는 앞으로, 앞으로 오직 나아가는 것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죄의 노예근성이여 사라질 찌어다 아멘. 아멘
우리가 옛날의 그리운 사람들이며 사랑하던 친구들이며 아름다운 추억들은 회상할 수 있으나 세상 풍속이며 세상의 죄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육신의 소욕은 싸워서 이겨야할 것입니다. 옛날은 이미 지나간 것입니다. 주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옵소서. 승리와 결단과 기쁨을 주옵소서. 아멘.
2) 둘째로 그들은 우상숭배의 죄에 떨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구원해 내신 것은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함이었습니다. 여호와라 하는 이름 하시는 전능자가 계시고 그분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라 온 세계를 지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을 섬기게 하려고 은혜를 베푸셨건만 백성들은 큰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거기 절하며 춤추며 섬기면서 말하기를 [이분이 우리를 애급에서 구원해내신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몰랐고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도 잘못되었고 자기들이 받는 복과 은혜가 누구로부터 온 것인지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우상은 하나님이 아니셨으며, 그 방법은 성경적이 아니었으며. 그들이 받은 은혜와 복은 그 송아지가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을-혹은 다른 형상들을 돌로 만들고 금으로 만들어 섬깁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예배하고 복을 구하고 기도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들이 받은 복이 그 우상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모든 좋은 것이 하늘에 계신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온다.」고 말씀하시고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약1:17)고 했습니다. 모든 좋은 것은 우리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분은 [선인과 악인에게 똑같이 비를 내리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저 이교도들이 옛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가 만든 이 금송아지가, 저 금신상이, 저 돌로 만든 앉아있는 사람형상이 우리를 인도하고 복을 주었다고 하며 섬기는 것은 그들이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내려 온다.]는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이방신들이나 불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좋은 것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신분을 물론하고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합니다. 이것은 기독교인이나 세상 사람이나 이교도까지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섬기는 신들이 복을 준 게 아니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상숭배는 성령의 진노를 유발하는 것이며 다른 신을 섬길 때 계명의 두려움이 임하는 것입니다.
3) 셋째로 그들은 버림을 받았습니다.
출애굽부터 바벨론으로 포로 되어 가기까지 반역의 큰 역사는 우상숭배였으며 이방신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바로 그 신들과 우상이 이스라엘을 망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주인은 하나님 여호와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우상숭배와 다른 신 섬기는 것을 보시고 신적 질투를 발하십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영혼은 불쌍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이여, 나를 버리지 말라고]애원했으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말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시오, 능력이시오, 영광이시오, 충만 이시며, 축복입니다. 주님 나를 떠나시면 우리는 천지간에 금생과 내세에 안식하고 머물 곳이 없습니다. 엄마를 잃은 애기처럼 불쌍하고 처량한 신세가 됩니다. 우리는 떠나시는 주님을 붙들어야합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피가 우리를 넉넉히 도와주실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고마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다. 는 405장 찬송과 같습니다.
주의 신이 떠나면 안 됩니다. 비록 마음에 우상 신을 드리고 주께 반역했을지라도 하나님의 버리심을 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생명이시고, 영광이시며,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없는 세상 고통과 싸움뿐 사람들은 무서워 떠네.- 평화의 와이 다시 오실 때 까지 죄와 전쟁은 끝이 없네, 주 없인 살 수 없네. 오직 주께만 구원 있네. 주 없는 세상 평화 없네. 오 주 없인 살 수 없네. (복음송가 71장) 죄가 우리를 누를 때 마다 [하루에 일곱 번 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하시던 주님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히 여기시는 은총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결론입니다.
사라지지 않는 세상의 노예근성과 과거를 그리워하는 죄를 벗어나서 바른 길을 갑시다. 모든 우상을 버리고 성령의 임재와 긍휼을 얻기 위해 보혈을 의지하여 참으로 회개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