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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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1990.12.5()

본문 : 고전 7:8~16

제목 : 결혼에 얽힌 문제들(이혼)

 

오늘날 부부관계에서의 무서운 타락은 점점 일반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부부들이 낯선 사람들처럼 살고 있으며 서로의 관심이나 행복을 전혀 모르고 각자 자신의 독자적인 人生을 살고 남남처럼 마음으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싸움, 증오, 불일치, 고통, 그리고 심지어는 가정폭력, 가출, 별거, 가족이나 자녀의 유기방임 심지어는 살인 그리고 이혼 이렇게 악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부부가 사랑하고 믿으며 자녀를 기르고 열심히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불법임신, 알콜중독, 성적문제, 간통이라든가 심각한 구타 혹은 수년 동안의 유기나 정신질환, 성병, 불합리한 여러 행위 등으로 이혼하는 경우는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경우에는 아주 사소한 이유도 쉽게 갈라서기도 합니다.

 

어떤 부부는 아내가 음식을 만들 때 너무 소금을 넣어 짜게 하기 때문에 이혼한 예도 있습니다. 서로 감정과 자존심을 세우다가 그러면 이혼하자 하고 해버린 부부입니다. 얼마 후에 그들은 다시 합쳤습니다. 어느날 그들은 식탁에 마주 앉아 옛날 일을 회상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우리가 단순한 문제로 이혼 했었다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했고 아내는 그렇지만 그렇게 짠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잖아요?라고 말하자 정말로 짰다니까!이러다가 그들은 또 싸우고 두 번째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대에는 남편이 이유 없이 그리고 부양비를 줄 필요도 없이 아내에게 이혼을 통고하는 순간에 이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과 이혼 할 수 없었습니다. 단지 결혼시에 자기 아내가 처녀가 아니었다고 잘못 비난했던 남자나(22:13-19) 처녀를 유혹하여 정혼하지 않은 여자를 범하여 그와 결혼한 남자도 이혼 할 수 없었습니다(22:28-29).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혼 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어서 이혼율은 점점 증가되고 있습니다. 일반 부부들 가운데서도 함께 살면서도 심리적인 이혼 상태나 영적 이혼 상태에 있는 가정이 많이 있습니다. 극도의 불만이 쌓이고 감정이 식게 되면 심리적인 이혼 상태에 있게 되고 종교적인 문제 때문에 지나치게 괴롭히게 되면 영적 이혼 상태에 이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고린도전서 71-7절에서 결혼생활 중 여러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봤습니다. 그 중에 성에 관한 것으로서 기본적인 원리 4가지가 있는데

1)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의지하여 자신의 성적인 욕구를 충족시킨다.

2) 사람이 결혼하면 자기 몸에 대한 권리를 배우자에게 주게 된다.

3) 어느 배우자도 합의한 기간을 제외하고 상대에게서 부부의 성적인 권리를 뺏지 못한다.

4) 만약 그 권리를 인정 안하면 마귀의 유혹을 받을 우려가 있다 했으며

주님은 하나님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해서 특수한 예를 죄외하고 이혼이 결코 허락될 수 없는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하도 심각하게 변해가고 타락 되어서 결혼이나 가정의 순결은 매우 지켜지기가 어려운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래도 아직 교회만은 거룩한 말씀을 붙들고 있는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가정과 결혼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1. 남자들의 의식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급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또한 과학과 공업이 굉장히 발달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옛날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들이 시집 올 때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결혼을 위한 준비로서 빨래, 다리미질, 바느질, 요리 등을 할 수 있었으며 그것은 가사일에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여성들은 보편적으로 이 모든 일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탁기가 빨래를 해주고 세탁소가 있으며 요리는 엄마가 해주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온갖 음식점, 튀김집, 빵집을 이용 할 수 있기 때문이며 시장에 가서 옷은 얼마든지 사 입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전형적인 10대의 소녀나 20대의 처녀들은 가정적인 일에 신경을 쓰기보다 주로 편리한 기계들을 의지하고 낭만적인 생활이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나 직장에서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였어도 남자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사랑하는 여자나 아내에게서 옛날의 그 가정적인 모습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여자가 아무리 많이 배우고 똑똑하고 예뻐도 분명히 자기 옷을 준비해 주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 줄 알고, 친구들을 잘 접대하고 자기의 수종을 잘 들어주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잘 안되게 될 때 문제가 상당히 심각하게 발생하는 것입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시대는 변하였어도 남자들의 마음은 결코 변하지 않았습니다.

 

2. 둘째는 보는 것과 사는 것이 다른 데서 오는 문제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며 외모는 사람을 능히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와 뜻을 잘 구해야 합니다. 얼굴만 예쁘고 마음 나쁜 사람을 구하다가는 큰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뭐라 해도 사람은 외모를 보기 때문에 그것은 중요합니다. 남자가 여자를 볼 때 그는 먼저 그녀의 교육 수준이나 지성이나 영성을 보지 않고 그녀의 외모를 봅니다. 우리는 사랑은 눈을 멀게 한다는 말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결혼은 그 멀어버린 눈을 뜨게 합니다.

즉 보는 것과 함께 사는 차이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함께 살아봐야 드디어 상대의 결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자는 남편의 더러운 옷들과 냄새나는 양말을 보고 남자는 자기 아내가 전혀 가정적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거나 자기가 고른 장미꽃처럼 아름답고 귀한 여자가 사실은 그렇지 않고 평범하거나 들릴라 같이 좋지 않은 女子라는 것을 깨닫고 후회합니다. 이렇게 해서 결혼 현실의 갈등이 오면서 불만이 쌓여 갑니다.

 

3. 이혼 해도 좋은 것인가?

요즈음 미국의 이혼율은 무려 50%에 이른다고 합니다. 또 어떤 조사에 의하면 부부간의 애정과 가정생활에 만족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1,000명 중 세 사람이요, %로 따져 0.3%, 그런대로 산다는 사람이 20%, 할 수 없이 산다는 사람이 30%, 정말 못 살겠다는 사람이 49.7%이니 1,000명 중 세 사람만이 자기의 가정生活에 만족한다는 통계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떠합니까?

이 땅의 많은 가정들이 좀 먹었습니다. 귀신의 침투를 받아 속으로 썪고 곪고 부식되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이도 우리 기독교인들의 가정에는 그래도 빛이 남아있는 것을 감사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다 믿는 가정 특히 다 은혜받은 가정에서는 거의 이혼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법이 그들을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대학의 역사학자의 부인이 심심풀이로 화투를 치다가 그만 본격적인 도박꾼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큰돈을 날려서 땅도 집도 다 남의 것이 되었습니다. 물론 남편 몰래 한 것이지요. 그런데도 이 역사학자는 그런대는 전혀 관심도 없이 오직 서재와 학교에 묻혀 있었습니다. 어느날 자기 서재에 있던 휘귀한 옛 서책들이 없어진 것을 보고서야 깜짝 놀랐습니다. 아내에게 그 책 어디 갔느냐? 고 물었을 때 그제서야 모든 사정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이혼 했습니다.

 

우리 가정의 이런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주께서 각각 가정의 최고 사령관이 되셔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이 남편과 아내의 사이에 중재자가 되시고 권위로 임하실 때 그 가정의 위기는 사라질 것입니다. 마태복음 19:3 이하에 보면 사람들이 이혼에 대하여 주께 물었을 때 주님은 분명하게 이혼의 불가함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것이니라하셨습니다.또한 바울사도도 본문에서 여자는 남편에서 갈라서지 말고(10)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11)고 하셨습니다. 또한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나 아내와 사는 사람이라도 성도가 먼저 비록 종교적 이유 때문이라도 헤어지자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버리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12-13)하셨습니다.

즉 이혼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4. 이혼이 가능한 특별한 예외!

원칙적으로는 이혼이 불가하지만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1) 배우자의 부정은 이혼의 사유가 됩니다. 19:9 -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 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명백한 증거가 있을 경우 이혼의 사유가 되나 꼭! 이혼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할 수 있으면 참고 가능하면 안하는 것이 더욱 좋습니다.

 

2) 두 번째로 신앙문제 때문에 이혼을 강요하거든 해도 됩니다.

즉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너는 예수를 믿으니까 너하고는 못 살겠다. 헤어지자할 때는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 봐서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실제로 믿는 것이 싫어서 헤어지기를 원하면 할 수 없습니다. 이혼해도 됩니다.

 

오늘 본문의 15절의 말씀에 혹 믿지 않는 자가 갈리면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 받을게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할 수만 있으면 참고 이혼해서는 안됩니다. 많은 기독교인 아내들이 불신 남편들의 핍박으로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참고 기도해서 결국은 남편도 믿게 하고 집사도 되고 장로도 되게 하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성급히 이혼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는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입니다.

 

옛날 남성 상위가 주심하던 時代에도 아내를 버려서는 안되는 세가지 경우가 있었는데

첫째가 아내가 돌아갈 집이 없을 때

둘째가 시부모 3년상을 치뤘을 때

셋째는 결혼 당시 가난하여 함께 고생하다가 부귀영화를 누렸을 때

함께 고생한 아내를 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른 바 조강지처를 버려서는 안된다 그말입니다.

 

옛날 광무제 時代에 송홍이라는 충신이 있었는데 모든 일에 착실하고 인품이 고상하며 호남이었다고 합니다. 궁중에 자주 드나들게 되니 광무제의 누이 동생인 호양공주가 연정을 품고 왕에게 그와 결혼하기를 청하자 왕은 신하 송홍에게 남자가 입신출세하면 교제 상대도 바꾸어야 하고 아내도 교양있고 인물 좋고 출세에 도움이 될 여자로 바꾸는게 현명하지 않겠는가?했습니다. 송홍은 이에 대답하기를 내가 가난할 때부터 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함께 고생한 아내를 어찌 버릴 수 있사오리까? 다른 어명은 다 받아들여도 이 일은 하늘의 뜻을 거스리는 일이니 관용하시기 바라나이다.했습니다. 왕은 그 뜻에 감탄하여 호양 공주의 뜻을 돌리고 그를 더욱 후대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조강지처라는 말이 생긴 것입니다. (술지게미조) (겨강)자의 조강지처입니다. 술지게미와 겨를 먹으며 함께 고생한 아내라는 것입니다. 그런 아내는 못 버린다는 것입니다.

 

에배소서 5-6장에 복된 가정이 되는 비결 몇 가지가 있는데

아내는 남편에게 주께 하듯 하고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주께서 교회를 사랑한 것 같이 하고

자녀들은 주안에서 순종하고 공경하며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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