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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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1990.9.30(주낮)

본문 : 고전 4:1~5

제목 : 그리스도의 일군

 

본문 가운데서는 그리스도의 일군에 대하여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분쟁에 휩쓸리게 되자 여러 하나님의 종들이 본의 아니게 그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 끼어들게 되어 구설과 비판과 지지의 표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바울, 베드로, 아볼로, 그리고 심지어는 예수님까지도 한 분당의 우두머리처럼 되어버린 셈입니다. 바울이나 베드로나 아볼로 등은 다 훌륭한 사도요 목사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태풍의 눈처럼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훌륭한 그리스도의 종들이었는데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이들을 두고 설왕설래하며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바울 계열, 베드로 계열, 아볼로 계열 그리고 황공스럽게도 우리 주 예수님 마저도 한계열의 머리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선한 뜻에서였겠지만 결국은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자”(고전 1:12) 라는 파벌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문제는 꼬리를 물고 일어나서 서로 반대파는 다른 계열의 우두머리를 비판하고 비방하는 상태로까지 악화 되었습니다. 그래서 3절에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고 바울이 바른 말로 응수한 것입니다. 또한 다만 나를 판단 하실이는 하나님 뿐이시다. 주님 뿐이다. 주님 오시기 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고 호통한 것입니다. 어쩌면 바울 자신도 반대파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이 분쟁은 교인들이 만든 것이지 사도들이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분명히 자신들의 영적 위치를 말해 주었습니다. 어떤 교회는 전도사가 혹은 목사가 즉 주의 종들이 문제와 파벌을 일으키는 원흉이 되어 교회를 소란케 하는 데 이 고린도 교회는 훌륭한 하나님의 종들을 가지고 교인들의 혼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어쨌든 이런 관점과 배경에서 본문이 기록 되었다는 것입니다.

 

1. 첫째로 사역자는 그리스도의 일군이라는 것입니다.

일군이란 말은 υπηρετας(훼페레타스)로서 배아래서 노젓는 옛 노예들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옛 노예들의 발을 쇠고랑으로 묶어서 배 아랫 창에서 노를 젓게 했습니다. 이들처럼 그리스도의 종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철저히 묶여있어 복종해야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발이 착고에 채여 배에 연결된 것처럼 그리스도의 종들은 주인되신 그리스도에게 매여 있는 존재지 사람들에게 매여 있지 않다는 것 즉 교인들에게 매인 종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매인 종이라는 중대한 뜻이 있습니다. 그런고로 그리스도의 참다운 종들은 사람의 여론이나 교인들의 의견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더욱 존중합니다. 그들은 말 그대로 그리스도의 종들이기 때문입니다. 민주 정치에는 여론의 힘이 크게 작용하나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권위를 능가할 여론이 형성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뜻을 다수의 의견위에 군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는 온 천하와 온 교회와 모든 교인들을 능히 굴복시킬 만한 충분한 위엄과 권세가 있으며 그 말씀에 순복하는 영혼은 복 있는 자입니다. 참다운 그리스도의 종은 그 주인 되신 하나님의 말씀에 전폭적으로 순종하는데 그 첫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 기초위에 모든 사역이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2. 둘째로 사역자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이란 복음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맡은 자는 οκο-νμος(오이코노모스) 라는 말로 집을 지키는 자라는 뜻이요 또 청지기라는 뜻도 있습니다. 청지기, 건물 관리인, 또한 회계 책임자, 감독자, 후견인 주인의 소유를 맡아 관리하는 종입니다. 원어의 이 모든 의미가 하나님의 종들의 책임과 위치를 잘 설명해 줍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지키는 자요, 주인이신 하나님께 책임을 맡아서 하나님의 교회를 관리하는 자요, 또 주인의 양 무리를 치는 목자요 또한 후견인이며 교회의 전반적인 일을 총괄하는 감독이며 재정을 감독 운영하는 회계 책임자요 또 나누어 준다는 뜻도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비밀한 말씀을 나누어 전하고 가르치는 자라는 뜻도 있습니다. 또한 말씀의 관리자입니다. 또한 그 말씀 선포의 권세가 그에게 전면적으로 주어졌기 때문에 그 권세에 대하여 누가 뭐라고 시비해서는 안됩니다. 혹 은혜가 없다고는 생각할 수 없으나 왜 설교를 그렇게 하느냐고는 못합니다. 이단 사설이 아닌 한 그 권세 말씀의 비밀을 맡은 권세는 교인들이 상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말씀을 가지고 트집 잡는 마귀가 가장 악질적인 종류입니다. 이런 귀신에 충동되면 참으로 주의 종들에게 무서운 가시노릇을 하게 됩니다. 이런 대감 교인들이 있는 교회의 목회자들은 하나님께 맞추는 목회나 설교가 아니라 교회의 유력자 돈 많이 내는 장로 권사들에게 자기를 맞추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대감 장로나 박대감 권사들이 그것을 강력히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교회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나 참다운 말씀 중심 하나님 절대주권이 역사 할 수 있습니까? 이런 저주 받은 교회와 불쌍한 교인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본주의 신앙노선으로 타락한 교회의 비참한 모습니다. 그런고로 모든 주의 종들은 철저히 그리스도의 종이요, 철저히 하나님 말씀의 선포자요 철저히 하나님의 권위를 입은 자들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선포되는 곳에 그 분의 영광이 드러나고 주께서 높임을 받으십니다.

 

3. 셋째로 그리스도의 종들은 충성해야 합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 했습니다. 여호와의 눈이 충성된 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맡았으면 최선을 다해서 충성해야 합니다. 일군은 일을 잘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일군은 그리스도의 일을 잘 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할 뿐 아니라 최상의 결과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주의 일을 충성되게 끝마치고 인생을 마칠 수 있는 자는 참으로 복 받은 영혼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그럴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주의 일을 하다가 중지하면 안됩니다. 그리고 진실해야 합니다. 충성이란 말은 πιστς (피스토스) 라는 말로 믿을 수 있다그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 중에 믿을 만한 사람이 있고 믿을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일군 중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목사님은 사역자를 길러내기도 하고 쓰기도 하는데 본래 원목같이 다듬어지지 않은 초보자들을 주께서 보내시기 때문에 이를 훈련 혹은 봉사하게 하다보면 많은 깨달음을 받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일정한 정도까지 가서는 성장을 멈추고 늙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그 가치가 없어집니다. 어떤 이는 같은 실수를 계속 수년을 두고 반복하고 인간적으로 충성 곧 믿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때는 그가 아무리 새 마음으로 한다 해도 믿을 수가 없어요. 글쎄 두고 보자그런 마음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일선에 투입된 종들이 이미 늙어서 조직체 혹은 유기체로의 교회 안에서 순진성과 충성을 잃고 독자 노선에 들어서면 그의 끝이 다가오게 됩니다. 충성스럽다 함은 믿을 만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나 사람에게 믿음을 주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 가룟유다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였는데 그는 주님 일행이 쓸 돈궤를 맡은 자 오늘날로 말하면 재정 담당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믿을 만한 자가 못되었습니다. (12:6)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라했습니다. 그는 좀 도둑놈이었습니다. 그래서 버림받고 저주 받았습니다.

필라델피아의 어떤 교회에 10년에 걸쳐 겨우 건축헌금으로 3만불을 마련했는데 그 교회의 회계업무를 맡은 어떤 집사가 몽땅 가지고 도망을 쳤습니다. 한참 지나서 그 집사의 형을 통하여 그를 찾았는데 양심이 있었던지 건축기금 중에서 다행히 조금 빼어 썼다는 것입니다. 한국 어느 교회에서 A라는 집사에게 교회의 헌금을 관리하도록 맡겨 놓았는데 그 공금을 자기 개인 사업에 사용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로부터 매를 맞기 시작했는데 사업은 완전히 실패했고 그 집사는 사람을 때려서 살인을 하여 투옥 되었었고, 교회가 불쌍히 여겨서 교회에서 셋방을 얻어 주었는데 그것마저 화재로 타 버렸고 자녀 중에 한 아들이 송곳을 가지고 놀다가 자기 눈을 찔러 병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B라는 집사에게 회계 일을 맡겼더니 진실하게 일을 하기는 했지만 공사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더랍니다. 공사를 구별 못하면 하나님의 돈을 쌈지돈 꺼내듯 꺼내 쓰고 또 다른 것으로 대체 해 놓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공금 관리는 철저히 냉정하게 그리고 특히 하나님의 돈은 거룩하고 선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돈 잘못 쓰면 하나님의 문책을 받게 됩니다. 이렇듯 모든 일에 충성된 자를 주가 사랑하십니다.

 

4. 넷째로 판단 받는데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판단 혹은 심판에는

첫째로 남에게 받는 판단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 속에 단체와 조직 속에 공동체의 일원으로 혼자 살지 않고 더불어 살기 때문에 내게 대하여 남이 가만두지 않고 판단합니다. 어떻구 어떻구 어떻구 그러합니다. 또 우리는 타인의 호평과 칭찬을 원합니다. 그러나 남이 나를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엉뚱한 오해나 칭찬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했습니다.

둘째로 자기 양심의 판단이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양심은 영적 한 기능인데 선악을 분별하는 영혼의 기능입니다. 그래서 양심의 가책이 없으면 우리 마음이 담력을 얻고 하나님께도 당당합니다. 물론 그것 때문에 의로워지는 것은 아니지만요. 또 양심은 그의 지식에 근거하기 때문에 절대적인게 아닙니다.

셋째가 하나님의 판단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그 분 앞에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다른 사람이 모르는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고 어둠 속에 감추었던 사건들이 드러납니다. 그때에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칭찬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그리고 고후 10:17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하셨습니다.


결론입니다.

모든 사역자는

1)주님의 일군이요 2)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요 3)충성해야 하며 4)인간의 판단, 자기 판단보다 하나님께 칭찬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아멘.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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