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린교회
로그인 | 회원가입
 
 

일시 : 1990.8.19(주낮)

본문 : 고전 1:17~31

제목 : 십자가의 도(2)

 

지난 시간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사명의 초점이요 또한 성도들이 치중해야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전도도 못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교회에 있어서 세례가 어떠니 은사가 어떠니, 제물이 어떠니 하고 싸움질만 하고 있으니 바울사도의 인간성이 가장 현저하게 나타난 책이 고린도전후서입니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훈계와 책망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분쟁하는 교회와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로부터 책망과 문책과 진노밖에 더 나올게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콩이야 팥이야 하고 교회 안에서 싸우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형제와 싸우기 앞서 원수 마귀와의 영적인 큰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전에서 분쟁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분쟁 많은 교회가 부흥하는 예가 없고 점점 더 숫자가 줄어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전할 것입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해야 합니다.

 

1. 십자가의 도를 전하자.

그렇다고 울릉도 향나무나 레바논 백향목으로 만든 고급의 나무 십자가를 만들고 전한다는 것이 아니고 혹은 청동이나 대리석으로 빛나는 강단의 십자가 형태도 아니고 순금과 은과 보석으로 꾸며진 빛나는 십자가를 전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십자가의 사건 속에 포함된 영적의미 즉 주 예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천당가게 하시려고 대속의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그 사실을 전하고 이렇게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영원한 속죄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는 것입니다. 진시황의 불로초 불사약도 소용이 없고 도교의 신선술도 인류를 불사의 생명에 이르지 못하게 함은 근원적인 죄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지고가신 십자가의 보혈은 능히 인류를 이 사망과 저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착한 일을 해서 천당복락 영생불사의 축복을 받는게 아니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입니다. 본래는 십자가가 저주의 상징이었습니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아래 있는자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 부터는 그 의미가 바꿔졌습니다. 십자가가 생명이요, 구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멀리서 교회의 십자가 종탑이 보이면 우리에게 은혜가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구원이요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2.십자가의 도의 이중성

1:18에 십자가의 도가 사람들에게 이중의 의미를 띠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1)첫째는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매우 어리석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대한 말씀은 영적인 차원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진리로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이 구주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에게는 성령이 없습니다. 알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합니다. 세상이 받는 것은 악령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저 갈보리 언덕에서 피흘려 죽으신 예수님과 자기가 무슨 큰 관련이 있다고 생각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사건이 이해가 안되니까 나사렛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니 큰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했다고 요망한 말을 퍼트립니다. 통일교도들의 말입니다.

십자가의도는 영으로만 인식되는 것입니다. 과학이나 철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하나님의 은혜를 알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존재의 변두리만을 볼 뿐입니다. 예수께서 구주이심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자만 압니다. 하나님께서 알게 하시면 그 분이 누구인줄을 알게 됩니다. 성령께서 알게 하셔야 그 십자가의 감격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13~14절에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하신대로 그 말씀의 뜻이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지혜가 아무리 발달해도 그 영적차원의 진리를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적 지각력이 작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안믿는 사람들 특히 잘나고 똑똑하고 많이 배운 자들에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으니 믿으면 죄사함 받는다 하면 세상에 저렇게 멀쩡한 사람들이 이렇게도 어리석은 소리를 할까?하고 오히려 우리를 불쌍히 여깁니다. 주제파악 못하고 우리를 어리석다 합니다. 실제적으로 그들 생각에는 기독교의 교리가 너무너무 어리석이 보이는 것입니다. 영적차원의 진리와 사건이 인간의 글과 말로 표현되었으니 그것을 모르는게 당연하고 어리석은 소리로 들리는 것입니다. 영적지식은 영적 차원으로 올라가서 읽고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4차원적인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글과 말로 표현된 내용이외에 더 심오하고 깊은 뜻이 숨겨진 것입니다. 누가 쓰고 계시하신 책입니까? 하나님의 성령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조명과 해석이 필요한 것입니다.

 

2)둘째로 믿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그리스도와 십자가의 죽음 우리죄의 용서와 구원 , 그 속에 깃들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믿는 성도로서 그 십자가 아래서 눈물 흘려 보지 않은 자가 누가 있습니까?

 

저 옛날 제가 첫 목회할 때 어느 동네에 성도들과 전도를 갔습니다. 한 소녀를 만났습니다. 옛날에 교회를 다녔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 나오라고 하고 왔는데 그 다음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데 그 처녀가 왔습니다. 그때에 우리가 부른 찬송이 웬일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 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내 지은 죄 다 지시고 못 박히셨으니 웬일인가 웬 은혠가 그 사랑 크셔라. 나 십자가 대할 때에 그 일이 고마워 내 얼굴 감히 못 뵈고 눈물 뿌리도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하는 141장 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성령이 온 회중에 임하사 그 찬송의 내용과 가사가 모든 성도의 마음을 찔렀습니다. 큰 감사와 감동 중에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지는데 그 소녀도 그때 감동되어 회개의 눈물로 깨어지는 걸 봤습니다.

이렇게 십자가의 도는 믿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어 죄인을 의인되게 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며 흉악한 죄인이 변하여 착한 사람이 되게 하며 너무나도 뜨거운 감동과 은혜를 실감케 합니다. 같은 진리가 이 같이 판이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세계에 지혜자도 있고 변사도 있고 선비도 있으나 다 미련케 되어 이 감추어진 하나님의 은혜의 도를 깨닫지 못합니다. 분명히 21절에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하신 것 입니다.

공부 많이 하면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게 안되니까 먼저 받은 성도들이 나가서 전도를 해서 예수님과 그 십자가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때 성령께서 저들의 마음문을 밝히시면 주의 사랑을 깨닫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렇게도 공부를 많이 했어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이상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뵈는 체험을 한 다음에 즉시 그분이 세상의 구세주이심을 깨달아 알았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구언과 은혜는 영적체험과 성령으로 알아지는 것입니다. 믿는 우리에게는 (2:15)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십자가로 승리 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는 능력의 원천이요 최상의 지혜입니다. 마귀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름 끼치도록 무서워하고 싫어합니다. 그 이유는 십자가로 마귀의 역사를 멸하셨기 때문입니다.

 

3.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전할 것입니까? “말의 지혜로 하지 않는다했습니다.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전1:17)했습니다.

말의 지혜라 함은 소피아 로구로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같은 그리스의 사상가들이 구사했던 논리 정연한 웅변술이나 수사학변론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휼륭한 웅변이나 지혜로운 연설 인간 학문등으로 사람을 혹하게 해서 교회로 끌어오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방법으로 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헛된다면 구원받을 영혼이 하나도 없을 것이니 사람을 데려다 놓고 별 깊고 심오한 철학을 말하여 현혹시켜도 그 영혼 구원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의 사실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깨달아 지는게 아니고 영적인 방법과 차원에서 저절로 알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방법이 인간적이냐 영적이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전도와 목회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고전21~2절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 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 하였음이라..하였고 24~5절에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하였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나타나는 것은 전도의 정상적인 원칙은 성령의 나타남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의 나타남은 하나님의 능력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 받게 하는게 가장 빠른 구원의 비결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어떤 사람이 전도를 받고 교회에 나왔는데 갑자기 찬송을 부르다 말고 눈물이 비오듯 쏟아지며 말씀이 믿어지고 회개가 일어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어떤 이는 갑자기 환상이 보이는데 예수님이 강단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이는 꿈속에서 교회에 가라는 지시를 받습니다. 어떤 이는 몸에 병이 있었는데 갑자기 후끈하더니 깨끗해졌습니다. 누구는 짧아졌던 다리가 길어집니다. 누구는 말씀이 깨달아지면서 그 말씀이 다 자기에게 하는 것 같습니다. 눈물이 쏟아지고, 기도가 터지고, 방언이 나타나고 감동이 되고, 결심이 되고 새 마음이 되고 하여튼 이상한 사건을 체험하면서 예수님을 분명히 믿게 되고 십자가의 은혜가 깨달아 집니다. 이것이 은혜요, 이것이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는 목회요 전도입니다. 인간의 지혜나 연설이 사람을 잡는게 아니고 성령의 감동과 은사가 나타나 사람의 마음을 바꿔놓고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렇게 될까요. 성령의 능력을 받고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베드로처럼 많은 영혼을 십자가의 도로 이끌어 구원시킬 수 있습니다. 기도 많이 하십시오. 그래서 영력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으십시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오직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올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셨고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하셨습니다. 그러니 큰 능력받아 많이 기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의 구원을 성공적으로 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나타남이 없으면 그 영혼 붙잡기 힘들어요. 기도 많이 해야 성령역사가 나타납니다. 말로만 전도해서는 안됩니다. 성령체험과 감동 없이 인간의 말과 지혜로 잡은 영혼은 사단이 미혹할 때 즉시 돌아섭니다. 또 십자가의 구원은 성령의 역사 없이는 우리에 적용이 안됩니다. 기도하고 능력받고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번호
 
닉네임 조회 등록일
685 1991.1.2(수)/고전 8:1~13/우상 제물
hyelin
4733 2020-08-19
684 1990.12.19(수)/ 고전 7:25~40/ 고린도전서 강해 - 결혼 이혼 독신
hyelin
5320 2020-07-09
683 1990.12.5(수)/ 고전 7:8~16/ 고린도전서 강해 - 결혼에 얽힌 문제들(이혼)
hyelin
5175 2020-06-25
682 1990.12.2(주낮)/ 고전 1:1~7/ 고린도전서 강해 - 결혼(부부)
hyelin
5247 2020-06-12
681 1990.11.25(주낮)/ 고전 7:29~31/ 고린도전서 강해 - 때가 단축하여 진고로
hyelin
4981 2020-05-10
680 1990.10.28(주낮)/ 고전 6장 1~8/ 고린도전서 강해 - 교회안의 송사문제
hyelin
5550 2019-11-03
679 1990.10.14(주낮)/ 고전 5:1~13/ 고린도전서 강해 -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죄(음행)
hyelin
5076 2019-10-25
678 1990.10.7(주낮)/ 고전 4:6~8/ 고린도전서 강해 - 고린도 교인들의 교만
hyelin
5403 2019-10-23
677 1990.9.30(주낮)/ 고전 4:1~5/ 고린도전서 강해 - 그리스도의 일군
hyelin
5316 2019-10-22
676 1990.9.23(주낮)/ 고전 3:16~17/ 고린도전서 강해 - 성전
hyelin
5250 2019-10-13
675 1990.9.16(주낮)/ 고전 3:10~23/ 고린도전서 강해 - 영적 건축자의 명심해야 할 2가지 사실
hyelin
5454 2019-09-20
674 1990.9.9(주낮)/ 고전 3:5~15/ 고린도전서 강해 - 일한대로 받는 상급
hyelin
5408 2019-09-18
673 1990.9.2(주낮)/ 고전 3:1~9/ 고린도전서 강해 - 육신에 속한 자
hyelin
6269 2019-09-15
672 1990.8.26(주낮)/ 고전 2:9~16/ 고린도전서 강해 - 성령의 깊은 것
hyelin
5693 2019-09-08
Selected 1990.8.19(주낮)/ 고전 1:17~31/ 고린도전서 강해 - 십자가의 도(2)
hyelin
5408 2019-09-07
670 1990.8.12(주낮)/ 고전 1:17~31/ 고린도전서 강해 - 십자가의 도(1)
hyelin
5306 2019-09-01
669 1990.8.5(주낮)/ 고전 1:10~17/ 고린도전서 강해 - 교회내에 당짓는 사람들
hyelin
7604 2019-08-29
668 1990.8.1(수)/ 고전 1:4~9/ 고린도전서 강해 - 고린도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
hyelin
6014 2019-08-25
667 1990.7.29 (주낮)/ 고전 1:1~3/ 고린도전서 강해 - 하나님의 부르심 (1)
hyelin
5722 2019-08-23
666 1992.10.11 (주낮)/ 막 3:22-30/ 마가복음 강해 - 성령을 훼방하는 죄(13)
hyelin
11833 2014-04-04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