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1990.8.12(주낮)
본문 : 고전 1:17~31
제목 : 십자가의 도(1)
우리는 지난 시간에 고린도 교회가 4개 이상의 당파로 갈려서 치열한 분쟁의 와중에 들어있었기 때문에 바울 사도가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권면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에 있어서 세례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 이 세례가 고린도 교회의 분쟁에 어느 정도 관련이 있었습니다. 즉 나는 바울사도에게 세례를 받았다. 나는 아볼로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나는 게바(베드로)에게 세례를 받았다. 또한 나는 예수님의 형제에게 세례를 받았다. 하는 식으로 파가 갈리는데 세례가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사도가 “분쟁”에 대하여 꾸짖으면서 세례에 관한 얘기를 한 것입니다.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13절부터 17절까지 세례라고 하는 말이 여섯 번이나 나오는 것을 보면 분명히 “세례” 문제도 분쟁의 한 요인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가이오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전 1:14~15)⌟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이 ⌜나는 바울의 혹은 베드로의 혹은 아볼로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고 무식한 소리를 하며 편당을 지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진실한 사도인 바울이 주님이 높아지지 않고 자기 이름으로 세례 받았다 하는 자들이 생길 것 같으니까 책망의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라(고전1:17)⌟고 말씀했습니다.
사실 세례를 누구에게 받았느냐 하는 것이나 어떤 형식으로 받았느냐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이 세례 문제로 말이 많고 심지어는 분열의 상태까지 갔었으니 바울이 ⌜자기는 여러 사람에게 세례를 주지 않은 게 감사하다⌟ 고 한 것입니다. 교회사상 여기서 벌써 “세례” 문제가 대두된 것을 봅니다. 누구에게 받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와서 교회의 한 분쟁 요소가 되었습니다. 본래 세례는 믿는 사람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인치고 거듭남의 표시오 그리스도와 합하여 함께 죽고 구원과 중생의 표요 죄사함 받은 의미를 띤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라 명하신 거룩한 예식입니다. 그래서 현대(現代) 교회에서도 세례를 받아야 정식 교인으로 인정해서 교회직분과 책임을 맡을 수 있고 진짜 교인대접을 받게 됩니다. 헌법상 교회의 정회원이 되려면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성찬과 더불어 지극히 중요한 예식으로서 진짜 믿음으로 받으면 거듭나고 죄사함 받는 체험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세례를 누구에게 받았느냐 어떻게 받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세례 문제로 교파 하나가 형성 되었는데 그것은 ⌜침례교회⌟ 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크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가장 큰 교단중의 하나입니다. 그들은 물을 뿌리거나 적셔서 머리에 얹는 것은 안된다, 잘못되었다. 세례가 아니라 즉 씻는게 아니라 혹은 뿌리는게 아니라 죽음의 표시로 옛날처럼 온몸을 물에 담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목욕탕 같은걸 만들어 놓고 거기 몸이 담그는 침례를 합니다. 그들의 말이 잘못된 것은 아니나 성경을 그런식으로 해석한다면 침례는 요단강이나 샘물에서 해야 한다고 우기면 교회 목욕탕 등에서 하는 것도 불법입니다. 성경은 세례의 형식에 대하여 별로 강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례라는 예식의 영적 의미를 강조합니다. 그래서 그 세례 문제는 누구에게 받았으며 어떤 형식으로 받은게 무엇이 그리 중요해서 싸움까지 하고 교회를 갈라놓겠느냐? 하는 것이 바울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낸신 것은 세례를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라(고전 1:17)⌟ 고 했습니다. 그것 가지고 너무 분쟁해 옳다 그르다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또 바울에게 받았든지 베드로에게 받았든지 아볼로에게 받았던 혜린교회의 이남웅 목사에게 받았던지 그게 뭐 그리 중요 하겠습니까? 그 세례의 영적의미가 중요한 것 이지요
⌜저는 옛날에 돌아가신 감리교의 유명한 부흥사 이강산 목사님에게 받았는데 이분이 별나게도 세례를 주시는데 찬송을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저 도적 회개하고서 이 샘에 씻었네 저 도적 같은 이 몸도 죄씻기 원하네“ 하는 190장을 부르는데 그렇게 은혜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통성기도를 시켜놓고 안수를 하며 나아갑니다. 너무너무 은혜로웠던 그 순간이었습니다. 또 어떤 목사님은 “예수를 믿는 사람 아무개 내가 성부와, 하고는 물에 잠긴 손을 한번 머리에 얹고 또 성자와, 할 때 또 한번 물에 잠긴손을 얹고 성령의, 할 때 또 그렇게 하고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합니다. 그런가 하면 저는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하면서 한번만 물에 흠벅 잠긴 손을 들어 안수 합니다.⌟ 방법이 어떠한 것이든 각 교회가 인정한 것들이 성경의 원리와 유별나게 다르지 않은 것이면 그것 가지고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침례도 옳고 장로교회식도 감리교회식도 그게 문제가 안됩니다. 또 어떤 목사님에게 받았던지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그런 문제로 싸울 것 까지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서는 이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둘째는 오직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고전1:17)⌟했습니다. 세례 주는게 중요한게 아니고 복음을 전하는게 중요한 것이요 주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사명의 초점이 된다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러니 너희도 그런 사소한 문제 가지고 싸우지 말고 더욱 중요한 복음 전하는데 치중하라. 복음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에수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인 것이다. 이렇게 교회를 권면한 것입니다. 또한 세례는 오직 하나이고 침례교 침례 따로 있고 감리교 장로교 세례, 천주교 영세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의 구원에 참예함이니 누구에게 받고 어디에서 받은게 문제 아니고 오직 교회의 통일성의 상징입니다. 그런 허망한 분쟁을 그치고 엉뚱한 싸움 말고 복음을 전하라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러합니다. 교회가 뭐하는 곳이냐 논쟁이나 하고 조직이니 하고 그리고 당파 싸움이나 하고 자기 권력 다툼이나 하고 세력 형성하고 놀기 좋고 말장난이나 하는 것이냐, 그게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서 한사람이라도 더 구원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 일에 대하여 성공하지 못하면 제 구실을 못하는 것입니다. 전도나 부흥, 성장은 곧 영혼 구원사업이 성공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것들은 주님을 예배하는 것 빼놓고는 아주 적은 일들입니다. 그러니 성도여러분, 잘난척 하지말고 한사람이라도 더 데려오고 은혜받게 하는일에 온갖 정성 다해야 합니다. 먼저 믿은 우리는 우리 하나님의 말씀과 주님을 믿는 믿음을 귀한 줄 알고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이같이 위대한 진리, 이같이 거룩한 종교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골2:2下)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느니라 하셨는데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이와 같습니다.
⌜1859년부터 제정 러시아 즉 오늘날 쏘련은 저 유롭에서 아시아 그리고 바다건너 아메리카의 알라스카까지 세계최대의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토를 관리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알라스카를 미국에 팔려고 8년간이나 비밀리에 흥정했습니다. 1867년 3월 마지막 주말 워싱톤주재 러시아 공사가 미 국무장관(소워드)에게 짜르 황제로부터 720만달러에 팔아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고 달려왔습니다. 앞을 내다 볼 줄 아는 미 국무장관은 주말인데도 직원들을 불러 작업을 하고 서명했습니다. 미의회에서는 소워드 장관을 역적이라고 “쓸모없는 땅을 720만불이나 주고 사다니 말도 안된다”고 공박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미국은 환화65억 명동땅값 65평 값도 안되는 돈으로 우리나라의 7,8배 남한의 한 15배쯤 되는 광대한 땅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요즈음 부동산 투기가 한참이었는데 세계역사상 가장 크게 성공한 부동산 투기는 알라스카를 미국이 싸구려로 산 것입니다. 그런데 요 쓸모없는 땅이라고 헐값에 팔은 그 알라스카에서 3금이 나와서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첫째는 검은 황금이라는 석유가 펑펑 쏟아져 나왔습니다. 자그마치 1천억 배럴이 묻혀있습니다. 둘째는 푸른금이라는 울창한 수림입니다. 무성한 삼림이 그 넓은 땅을 뒤덮고 있으며 이원시림은 많은 목재를 공급합니다. 제3은 진짜 누런 황금의 보고입니다. 그것뿐이 아니라 무진장한 석탄이며 풍부한 어족들 그야말로 연어, 방대한 삼림 등 풍부한 자원의 보고로서 알라스카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미국의 보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과 십자가의 도는 이보다 더한 축복과 무한한 은혜를 약속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과 십자가의 구원은 단 이 세상에서 생명이 존재하는 기간입니다. 그런즉 우리교회가 먼저 믿은 성도들이 이 진리를 널리 전해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 시키고 교회가 성장하도록 해야 합니다. 힘을 외부로 발산 못하니 내부에서 분쟁 하는 겁니다. 전도하지 못하는 교회는 싸움만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가 헛되게 합니다. 교회는 일, 사명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고 전하지 않으면 진리가 허망해져요. 하나님께서는 “전도”라는 방법으로 사람을 구원 하시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에 누군가 전도하지 않으면 사람이 구원받기 어렵습니다. 로마서 10장 13절~14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믿으리요” 했습니다.
전파하는자가 없이 어찌 믿으리요 했습니다. 그런즉 교회에서 싸움질이나 하고 권력다툼이나 신경전이나 벌리고 제잘난척이나 하고 성도들 미워나 하고 목사님 비방이나 하고 말씀 트집이나 잡고 교만 떨고 제잘난 멋에 겨워 한 시절 보낼 것이냐 아니면 교회에 맡기신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에 전심전력 할 것이냐 이 문제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아직 분명한 사명감 즉⌜주께서 나를 부르심은 나도 구원 받지만 또한 예수님을 전파하기 위함이라⌟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자는 깊이 사명을 자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라도 더 구원할까 어떻게 해야 교회가 부흥할까? 이게 문제입니다. 은행통장에 돈 모으는 재미도 좋지만 내가 전도한 사람이 하나 둘 구원 받고 성령받고 성장하고 자기 구역이 교회가 점점 수가 더해지고 성장하는 기쁨을 사모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