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의 싸구려 슬리퍼들
카렌침례교회의 목사안수를 받는 절차는 매우 까다롭고 어려운 과정이다.
본인이 원해서 목사안수를 받는 것이 아니다.
지역교회의 목회자중에 교회에서 교인들이 무리 없이 동의를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무리가 없다는 것은 반대하는 사람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반대를 하는 사람이 일부라도 있으면, 일단 교회에서 결정이 되지 않는다.
교회에서 결정이 안되면 본인이 혹시 원하더라도 길이 없다.
이런 과정에서 목회자는 가정생활, 나이, 목회자의 삶, 가르침과 지도력 등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검증되는 것이다.
신학 공부는 필수사항이 아니다. 신학공부를 하지 않아도 목사안수를 받는 자격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목회자의 목회지는 본인의 고향이나 부인의 고향이다.
이것은 목회를 위해서 마을에 간 것이 아니라, 그 교회에 소속된 성도 중에서 성도들이 목회자를 선발한다.
목회자가 되는 과정에서도 한번 삶이나 가정에서 1차로 검증을 받았지만 목사안수를 위한 과정은 더욱 철저하다.
외부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경우는 목사회에서 다시 결정이 안되면 인정받지 못한다.
어떤 목회자는 교인들 일부가 반대하는데 억지로 받았는데, 성찬식인도를 거부하여 지금까지 한번도 성찬 집례를 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나는 진담 반 농담 반으로 하는 말이 이곳에서는 목사안수를 받을 자격이 안되기 때문에 한국에서 먼저 받아왔다고 하곤 한다.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오늘은 카렌침례총회에서 목사회가 있는 날이다.
여러 안건들을 의논한다.
나는 장로교 목사이지만 외국인 선교사여서 예외로 두어 목사회의 정식회원으로 참여한다.
그런데 이들이 신고 온 신발을 보았다.
상당수가 슬리퍼이다.
촌스런 슬리퍼만 보면 그냥 가난한 민족의 한 모습처럼 보일 수도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표징처럼 보이는 슬리퍼를 통하여 상대적인 만족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들의 인격과 삶과 가정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경험한 나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가난과 척박한 상황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아름다운 삶의 모습의 흔적으로 보인다.
주님 나라에 가서 받을 상급을 계속 쌓아가고 있는 섬김의 신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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