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린교회
로그인 | 회원가입
 
 
조회 수 : 5544
2012.01.27 (16:16:25)

 

 

본문 : 22:1-30

제목 : 바울의 자기 간증

설교 : 이남웅 목사(95.12.6. )

 

 

본문은 군사들에게 들려 영문에 들어온 바울이 천부장의 허락을 받고 자기를 잡아 죽이려고 따라온 유대의 군중들에게 한 일종의 간증설교입니다. 바울은 위기의 순간에도 모인 군중을 향하여 자기가 체험하고 만난 예수에 대하여 증거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미 주 예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오직 예수의 충직한 종]이었기 때문에 그의 마음속에는 자나 깨나 오직 예수뿐이었습니다.

 

1) 내가 체험한 예수를 증거한 바울

사도바울은 바로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4)하면서 에배소 지역의 장로들에게 밀레도에서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가이사랴의 성도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할 때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21:13-14)하면서 올라온 것입니다. 그러니 매 맞아 죽을 뻔한 그 순간이 지나자마자 곧 바로 폭도들을 향하여 예수를 증거 한 것입니다.

 

그에게는 오직 예수님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주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했고 그래서 전에 유익하던 것들을 분토처럼 버리고 주 예수를 위한 충성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벧전2:9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하신 말씀같이 우리를 구원 하신 아름다운 주 예수님의 덕을 선전하는 자였습니다.

 

약장수는 약을 선전 하고 각 상품 회사들은 자사 제품을 선전하는 그야말로 현대는 광고시대요, 선전시대며 PR 시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 예수를 선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분은 아름다우시고 그 구원은 완전하고 영원하며 예수를 믿어야 우리가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선전합니까? 그 분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이 위대한 교리를 듣는 자가 복이 있고 믿는 자는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주님, 나는 오늘부터 모든 것을 버리고 일편단심 주님만 위해 살아가겠습니다. 주님위해 나는 살고 주님위해 일하며, 주님위해 고생하며, 주님위해 죽겠네 하면서 충성된 믿음의 길을 갑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온 일생을 걸어 충성할 만큼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며 충분한 가치가 있는 분입니다. 오직 주예수로 충만해 지시기를 바랍니다.

 

2) 둘째로 그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이었습니다.

가말리엘은 유대의 유명한 율법학자로서 행5:34-38처럼 체포되어온 사도들을 가만 내 버려두라. 만약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 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하며 사도들의 석방을 도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지도자였고 고귀한 지식을 가진 학자였습니다. 그의 높은 덕과 학문을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배우러 몰려들었는데 그 중에 유명한 인물인 사도바울도 들어있었습니다.

 

이 가말리엘은 유대의 유전 작성자로 유명한 힐렐의 손자요, 그가 별세했을 때 사람들은 탄식하기를 [율법의 영광이 떠났고 깨끗함과 거룩함이 죽었다]고 애석해 했다고 합니다.(Mishna Sotah 9:15)

 

바울은 이렇게 유대 최고의 석학에게서 공부했습니다. 본래 바울은 멀리 다소성에서 출생했으나 공부는 예루살렘의 가말리엘 대학에서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야말로 바울사도의 학벌과 지식은 사뭇 뛰어난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나 요한, 안드레 등이 고기 잡으며 노를 젓고 있을 때 바울은 대학에서 율법과 철학, 기타 고상한 학문과 헬라어를 공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지성을 갖춘 사람을 택하사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시고 주님의 복음을 세계화시키고 체계화 시키는 위대한 사역을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기독교 최초의 신학자며 예수그리스도의 전인이며 세계사상 가장 위대한 저술가였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기에 가장 합당한 인물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인물을 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큰 은혜를 못 받고 영적으로는 좀 어두워도 지식적으로는 학문이 높고 공부를 많이 한 박사들과 교수들을 하나님께서는 들어서 신학교수로 쓰시고 주의 종들을 키우는 사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공부할 수 있을 때 곧 젊을 때 공부 많이 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학교 다니는 것은 큰 축복인데 학생들은 그것을 잘 모릅니다.

 

바울이가 아침이면[학교가기 싫다]고 합니다. 그 심정 이해는 하지만 어릴 때 청소년 때 공부 많이 하는 것-즐거움으로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공부를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식과 학문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학문에는 즐거움과 보람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지도자들은 특히 우리 한국의 현대 인물들은 다 먼저 많이 공부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을 할 수 있으면 다 대학 보내고 더 많이 공부하도록 특별기도 많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작정기도 같은 것도 좋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는데 어떤 사람 곧 솔로몬은 일천 번제를 드려서 하나님께 지혜와 지식을 얻었습니다. 이를 본받아 어떤 성도는 남편 회개와 은혜받기를 위해 일천 번제 새벽 기도를 드렸습니다. 바로 권성희 집사님입니다. 그 기도를 받은 자가 남편 정봉채 씨입니다. 지금 교회의 유리를 맡은 분입니다. 도대체 얼마나 잘난 남편이기에 그 부인이 일천 날을 정성을 드린 기도를 한단 말입니까. 얼마 전에 끝났고 정 봉채 씨는 지금 여기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아내는 천 명 중에 하나로 찾기 어려운 귀한 아내이니 감사하며 지극히 사랑하고 잘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디 한 번 일어나 보십시오.

 

이와 같이 만약 누군가가 자기 자녀들의 대학 입학을 위하여 일천 번제 작정예배나 새벽기도나 철야기도 등을 드리면 대학문제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지 않겠습니까? 자 이처럼 공부 학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학벌이 아주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나는 학벌이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아직 어리고 젊은 사람은 정규적인 과정을 밟아서 자격을 취득할 것이요, 검정고시도 있고 통신학교도 있으니까 나이 많은 성인들은 그럴 수 없으니 책이라도 많이 읽을 것입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꼭 학벌을 높이기보다 지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독학할 수도 있고 유유히 지식을 더하여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많이 배운 사람보다 더욱 큰 지성을 갖출 수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실력을 기르는 것은 주님 주신 축복이니 배우기를 게을리 말고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3) 셋째로 바울은 특별한 영감과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비록 학문이 높고 준비가 된 사람이라도 성령의 영감과 하나님의 은사가 없이는 하나님을 위하여 큰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는 굉장한 은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메섹 도상에서 받은 것입니다. 그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결박하려고 다메섹으로 갈 때에 오정 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써 큰 빛이 그를 비추면서 그는 땅에 엎드려졌고 누군가가 그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주여, 뉘시오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정한 바 너의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그때 그는 예수님의 빛의 광채를 인하여 눈이 멀었으나 나중에 금식하고 아나니아의 기도를 받고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며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눈이 떠져 주 예수를 알아보게 된 것입니다. 자기의 택한 종이 자기를 핍박하는 것을 보고 주 예수께서 친히 그를 그 어리석음에서 구원하시려고 나타나신 것입니다(22:6-10)

 

그 이후로 바울은 중요한 시점에서 주 예수님을 친히 뵈옵는 영광의 순간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예수께서 자주 나타나셔서 그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의 영감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주 예수님과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영감과 능력이 크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18절에도 바울은 다메섹에서 회개한 후에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에서 기도하는 중 비몽사몽간에 주께서 나타나셔서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하고 지시하셨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행18:9-10에 바울의 고린도 전도 시 유대인들의 훼방이 있을 때에 밤에 주께서 환상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이렇게 주께서 또 나타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뵈옵고 내려올 때 그 얼굴에서 광채가 나서 수건으로 가렸다 했는데 신약에서는 참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바울이 그 생애에 여러 번 만난 것입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하는 찬송처럼 주 예수님 자신을 만나 뵙는 영광은 모든 은혜위에 뛰어납니다. 우리는 내세에나 가서 친히 만나 뵈올 수 있는 그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자주 뵙는 은혜를 받은 바울은 선택된 큰 그릇으로써 기독교의 기초를 놓은 사람인 것입니다. 주께서 나타나시지 않을 때는 그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27:23에 유라굴로라는 광풍에 로마로 가는 바울이 탄 배가 난파되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바울 곁에 나타났습니다.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고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주 예수께서 자주 만나주시던 사도바울 그러니까 그의 충성은 하늘에 닿았습니다. 그래서 폭도들에게서 간신히 벗어난 그때에도 자기를 죽이려는 자들에게 자기가 만난 예수님을 증거한 것입니다. 자 오늘 말씀을 정리해보면 바울의 학문이 높을 뿐만 아니라 주 예수께서 친히 자주 만나주시므로 영감과 은혜가 충만했던 그리고 그 지식과 은혜도 주를 위해 다 바친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의 종이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다.하던 그 사람입니다. 주여, 우리도 바울 같은 은혜와 충성됨을 주옵소서. 자 기도합시다. 아멘.

 

 

 

번호
 
닉네임 조회 등록일
145 no image 사도행전강해<83> / 너의 백성의 관원을 비방치 말라. / 행 23:1-35
hyelin
4765 2012-01-27
144 no image 2010년 4월 11일 / 주일밤 / 고전 6:19-20 / 자기피로 우리를 사신 예수님(2)
hyelin
3670 2012-01-27
143 no image 2010년 4월 11일 / 주일낮3부 / 고전 6:19-20 / 자기피로 우리를 사신 예수님
hyelin
3875 2012-01-27
Selected no image 사도행전강해<82> / 바울의 자기 간증 / 행 22:1-30
hyelin
5544 2012-01-27
141 no image 사도행전강해<81> / 체포된 바울 / 행 21:20-40
hyelin
4739 2012-01-27
140 no image 사도행전강해<80> /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선교보고) / 행 21:17-19
hyelin
5288 2012-01-27
139 no image 사도행전강해<79> /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 / 행 21:15-16
hyelin
7261 2012-01-27
138 no image 사도행전강해<78> / 성령의 감동 / 행 21:1-4
hyelin
4686 2012-01-27
137 no image 사도행전강해<77> / 가이사랴에 도착한 바울 / 행 21:1-14
hyelin
4619 2012-01-27
136 no image 사도행전강해<76> / 성도의 이별 / 행 20:34-38
hyelin
4666 2012-01-25
135 no image 사도행전강해<75> / 울며 헤어지는 성도들 / 행 20:30-38
hyelin
4576 2012-01-25
134 no image 사도행전강해<74> / 흉악한 이리 / 행 20:29-30
hyelin
5414 2012-01-25
133 no image 사도행전강해<73> / 목회자 / 행 20:28-38
hyelin
4992 2012-01-25
132 no image 사도행전강해<72> / 바울의 고별설교 / 행 20:22-27
hyelin
6028 2012-01-25
131 no image 사도행전강해<71> / 내가 어떻게 행한 바를 너희도 아는 바라. / 행 20:18-24
hyelin
4041 2012-01-25
130 no image 사도행전강해<70> / 드로아 전도 / 행 20:1-16
hyelin
4487 2012-01-25
129 no image 사도행전강해<69> / 드로아에서 일어난 일-유두고 / 행 20:7-12
hyelin
6290 2012-01-25
128 no image 사도행전강해<68> / 에베소의 시민데모 / 행 19:23-41
hyelin
5118 2012-01-25
127 no image 사도행전강해<67> / 에베소전도 / 엡 19:18
hyelin
3584 2012-01-25
126 no image 사도행전강해<66> / 에베소교회 / 엡 19:1-7
hyelin
4059 2012-01-25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