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행 17:11-15
제목 : 베뢰아 사람들
설교 : 이남웅 목사(95.10.1주.낮)
지난 시간에 베뢰아 지방에서 바울의 전도가 매우 성공적이어서 짧은 시간에 믿는 자가 많이 생겼고 또한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바울의 복음전도 방식이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에 대한 것이었고 또한 그의 전도가 말에 있지 않고 성령과 능력에 의한 성령전도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 더하여 베뢰아 전도의 성공 비결중의 하나가 그 지역의 영적인 정서가 매우 고상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성경은 베뢰아 사람은 매우 신사적이었다고 했습니다.(11) 그래서 말씀 듣는 태도부터 달랐습니다. 반감을 가지고 혹은 의도적인 악의를 가지고 혹은 비판적인 귀로 말씀을 들은 것이 아니고 매우 관심 있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 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성경을 상고하는데 왜 은혜가 안 되겠습니까? 그래서 믿는 자가 많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길 바닥같이 굳어있기 때문에 안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사울이 거꾸러지듯이 충격적인 방법의 은혜이거나 큰 사고나 어려움을 당해서 인간의 한계와 무지와 오만함이 깨어질 때에 하나님이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저 유대인들은 스데반이 천사의 얼굴을 하고 전하는데도 귀를 막고 이를 갈면서 덤벼들어 돌로 쳐 죽였고 사울이란 청년은 살기등등하게 그 증인으로 서서 마땅히 여겼습니다. 그런 그가 다메섹 도상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뵙고 엎드려 졌습니다. 이 사람은 택한 그릇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으나 완강하게 귀를 막고 죽을 때까지 복음을 거절하고 마음을 닫은 영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각 개인이나 사회나 민족이나 국가에 영적인 풍토가 각각 다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이 옥토와 같아서 복음에 대한 수용도가 아주 높습니다. 그래서 대개 전도하면 쉽게 마음이 열려 믿고 어떤 사람은 그 영적배경이 복잡하고 정신구조가 반 기독교적이어서 예를 들어 우상숭배의 풍습이 몸에 젖어있다든지 집안 배경이 이교적이든지 그래서 그들의 마음속을 벌써 석가모니가 지나가고 공자님이 지나가고, 진화론이 지나가서 마치 굳어버림 길바닥 같아서 복음을 들어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길가에 떨어진 씨가 되어 지나가던 새가 냉큼 집어 먹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인 풍토와 정신구조나 성품상의 배타적인 사람은 사도바울식의 은혜나 성령의 특별하신 배려나 충격적인 사건을 통하여 주께 오지만 그런 은혜가 없으면 천국문은 영원히 닫힌 문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완고한 마음을 깨뜨리고 구원의 문을 성령께서 열어주시게 하는 것이 간절한 중보기도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완악한 마음을 보고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는 중보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매우 고상했습니다. 심령의 상태가 고상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들은 귀족출신이어서 성경상고의 능력도 있었고 사리판단도 분명했습니다. “그렇구나.”하면 진리를 금방 받아드린 것입니다. 그 지역의 정서나 영적 상태가 매우 양호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 한국에서는 전도가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비교적 쉽고 잘 되는 편입니다. 그래서 선교 100년에 1300만의 성도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일본 같은 곳은 복음이 들어 온지 우리보다 곱절이 넘어도 즉 벌써 임진왜란 때에도 믿는 자가 많았는데도 교인수가 100만 정도입니다. 복음 전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안 받아드리는 게 아니라 “예, 예”하는데 다른 수백만의 일본 귀신이나 똑같이 그저 복비는 종교 정도로 이해하고 말기 때문에 우리 같은 전문적이고 영적인 기독교인이 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내가 일본 동경 예루살렘교회에 가 보았는데 믿지도 않는 일본 사람들이 교회 밖에서 안을 향해 지나가다가 잠깐 손을 모으고 빌고 갑니다. 그곳 목사님이 “저들이 보통 일본 여려 귀신처럼 하나님께도 별 의식 없이 복 빌고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그 나라 백성들의 마음이 모든 귀신들에게 열려있고 또 신도나 불교 등에 감염되어 있어서 일본열도 전체가 흑암한 영적 세력에 크게 눌려있는 상태라 복음전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만큼 마귀의 영권이 강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같은 곳은 많은 성도들의 기도와 그리고 성령 운동의 덕택으로 교회가 크게 부흥하고 마귀역사가 많이 억압과 제재를 당하기 때문에 복음전하고, 교회를 세우기가 그런 어둠의 나라들 보다 비교적 쉬웠는데 요즘 들어서 우리나라도 소득 1만불 시대로 접어들고 세속의 바람이 너무 강하게 불어와 서구의 교회들처럼 그 순수성이 사라지고 교회 개척하기가 점점 어려워져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에 의하지 않고는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일종의 한국 교회의 성장둔화의 시대가 왔고 비상대책과 성령의 은혜가 없는 한 이런 추세는 계속 될 것 같습니다. 더욱 기도 많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단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 민심을 소란 시켰고 특히 이장림의 일과 92.10.28일 성도휴거 망동은 온 나라와 백성들의 불신과 조롱을 받아서 기독교 전체가 욕을 먹고 오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공의가 사라져버린 “ 좋으신 하나님과 복 주시는 하나님”에 너무 치우치다보니 [의로운 사회의 등불]이었던 그 역할을 다 하지 못하므로 독재정권과도 싸우지 못했고 이러 저러한 이유로 불 꺼진 등불 취급을 받은 것입니다. 게다가 노태우 씨의 친 불교정책이 이 땅에 수많은 절과 무속을 크게 부흥시켜 거리마다 00사, 00암 등의 이름으로 불교와 귀신 섬기는 자들의 거점이 수 만개가 서 버렸습니다.
그래서 노씨의 정치를 종교적인 보면 미신정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후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충현 교회의 김영삼 장로님이 대통령이 되어 기대가 컸었는데 그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되는 기독교의 부흥에 별로 유익하지 못하고 자기의 길만 갔고 민족복음화의 비전은 없었으니 노태우씨가 불교 중흥기를 열은 것과는 정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섭섭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기대를 버렸습니다. 마음이 떠난 것입니다. 그것이 전 국민적인 현상이 되어 김영삼씨의 인기는 하늘 높이 올랐던 그 높은 곳에서 땅 바닥으로 추락해버렸습니다. 그것이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자당의 참패로 나타난 것입니다. 간 큰 남자는 시중에서 Y.S 칭찬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왕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과 이스라엘의 영적 부흥기를 열었건만 어찌하여 우리 장로 대통령은 그 길을 모를까 생각해 보면 안타깝습니다. 그를 양육하신 충현 교회의 원로 목사이신 김창인 목사님이 잘못 가르쳐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왜 하나님 제일주의 [하나님께 영광]의 신앙인으로 못 길러냈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들이 [목사님께서 말씀 좀 해주시지요.]했더니 [내 말 듣지 않으니 어찌합니까?]하더랍니다. 구중궁궐 같은 깊은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에게 누가 하나님의 뜻을 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 종들의 마음이 떠나면 성신이 떠나시고 민심은 천심이란 말처럼 민심이반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통령은 하나님 잘 섬기는 대통령, 민족복음화를 위해 전도하는 대통령, 히스기야 같고 다윗 같은 대통령되어 하나님의 영과의 깃발 높이 날려달라고 주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옛날 박정희 대통령 때 그 부인 육영수 여사가 청담스님에 심취해서 불교에 힘을 쏟자 보문사인가 그가 나가는 절에 한 자리 해 보려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어 뭐 신도가 30만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대통령에게 성령의 불이 떨어지면 국가의 영적 풍토와 정서는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1천만 영혼 구원하는 것도 아주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 좋은 기회를 문민정부에서 이미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는 각 나라나 개인이나 사회나 가정에 영적인 정서와 배경이 있어서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나 성도들에게도 차이가 있습니다. 어느 교회는 영적인 풍토가 아주 순하고 부드러워 기도가 잘되고 설교도 잘되고 성도들은 아멘, 아멘하며 은혜를 쉽게 받는데 육신에 속하고 은혜 받지 못하고 교만한 교인들이 많은 교회에 가면 악의 영권이 강해서 설교도 힘들고 기도도 어렵고 밤에 철야 하려면 의시시하고 말씀도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는 태고가 베뢰아 교인들처럼 신사적이고 간절함이 아니라 불손하고 오만합니다. 그리고 비판적이며 냉소적이며 무엇을 가르치려 하면 본인이 육신적이며 귀 구멍이 육신적이어서 이해하는 것도 인간적으로 듣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아니하니 무슨 은혜를 받겠습니까. 그 영적 풍토가 사단의 영향력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은혜 체험이 있는 성도가 많은 교회는 분위기가 아름답고 훈훈하지만 육신적 성도가 많은 교회는 말씀전하기도 어렵고 힘들뿐만 아니라 분위기가 세상적이고 육신냄새가 진동합니다. 죄악과 육의 비린내를 풍기며 목사와 장로와 집사들이 설쳐대니 거기에 무슨 영적 부흥이 일어나겠습니까. 아무튼 베뢰아 신자들은 참으로 신사적이었습니다. 그 영적 풍토가 좋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훌륭한 전도인 바울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전함과 성령의 역사와 옥토와 같은 심정을 가진 교인들이 합하여 베뢰아의 부흥이 일어났으니 우리 혜린 교회의 가는 앞길에도 이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