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행 17:10-16
제목 : 베뢰아 전도
설교 : 이남웅 목사(95.9.27. 수)
데살로니가에서 큰 소동이 있은 후 밤을 타서 바울과 실라는 베뢰아로 떠났습니다. 베뢰아는 데살로니가에서 약 200리쯤 떨어진 마케도니아 평원 남쪽 올림푸스 산맥 기슭에 있는 조그만 도시였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가서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전도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런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헬라 귀부인과 남자들이 적지 않게 믿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도 성공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교인이 많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니까 베뢰아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개척 교회를 해서 오랜 세월이 지나도 성도가 모이지 않아서 안타까운 것에 비하면 바울의 전도사역은 참으로 쉽고도 간단했습니다. 그들이 도착하는 곳이면 교회가 세워지고 믿는 자가 많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1) 첫째로 바울 전도의 핵심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고전 1:21-23에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미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전하니」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전했더니 구원받은 사람들이 많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고전 2:2에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목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했는데 사람의 영혼을 구하는 일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한 것처럼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이 사람들의 죄를 씻겨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 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고전2:21)했습니다. 말 잘하는 것이나 지혜로움에 있지 아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전해지는가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전도자는 다른 말은 못해도 복음을 간단명료하게 전달하는 능력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이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말은 시원치 않고 말하는 것도 졸한 바울이 가는 곳마다 많은 영혼들을 구원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베뢰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사역의 중심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와 그 구원인 것입니다. 마땅히 전도자는 예수님을 믿어야 할 것을, 왜 믿어야 하는가를, 믿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가를 늘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2) 둘째로 사도 바울의 전도는 성령의 전도요. 능력전도였습니다.
그냥 말씀으로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증거한 것이 아니요. 말씀 속에 능력이 실리고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저 고넬료의 가정에서 베드로가 복음을 전할 때-그도 역시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죄 씻음 받는다는 그 말을 설교했을 때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성령전도요. 능력전도라고 합니다. 사마리아 교회에 베드로와 요한이 내려가서 안수하니 저희에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행8:15-30)
또 예배소에 가서도 바울이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행19장)뿐만 아니라 베드로가 설교할 때 사람들이 마음에 찌려 [형제들아 그러면 우리가 어찌할꼬] 했습니다.(행2:17) 또 행6:10에 보니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은혜를 받게 하고 말씀을 듣고 마음이 찔려 회개케 하고 은사가 나타나게 하고 신유나 축사가 나타나게 하는 것이 능력전도요. 성령전도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확실하게 전하면서 성령이 역사하시니까 사람들이 즉시 믿는 일이 많아진 것입니다.
고전12:3에 [누구든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한 것처럼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마음을 감동시켜서 복음을 받아드리게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 전도 때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있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셨다.”(행16:14)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바울과 함께 하셔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시게 한 것입니다. 바울에게는 성령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왜 바울이 항상 성공적인 전도를 했느냐 하면 성령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반면 성령 없는 전도자는 슬프고 적막합니다. 성령 충만 있는 곳에 회개가 일어납니다. 믿는 사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런 원리도 모르고 자기 말이나 지혜나 인간적인 노력으로 목회를 한다거나 전도를 하려는 사람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전도자가 되려면, 목회자가 되려면 그런 것은 알고 해야지 그것도 모르고서 무슨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고생만 할뿐만 아니라 오히려 성령의 역사에 방해만 될 뿐입니다. 십자가의 진리가 없으니 열매가 없고 성령께서 감동치 않으시니 구원받는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 많이 하고 성령 충만하고 범죄 치 않을 때 역사가 많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도 많이 하는 교회는 부흥하고 성령 충만한 사람이 있어 교회를 이끌 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혼자 일하지 말라. 하나님의 영으로 일하시게 하라.
바울은 고전3:9에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 입니다. 동역자면 함께 일을 해야 합니다. 혼자하면 안 됩니다. 더구나 성령께서 우리의 동역자가 되시지만 또한 주가 되시므로 그분 모르고 그분 뜻대로 일할 때 열매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일군들이 풍성한 열매를 얻으려면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은혜를 많이 받아야 합니다. 은혜를 많이 받으니까 바울 같은 포악자도 그리스도의 사도요. 교회의 큰 기둥이 되었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를 알므로 나를 기둥같이 여긴다.]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바울이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가를 알므로 기둥 같이 여겼다고 한 것입니다.(갈2:9) 은혜 많이 받아야 합니다. 내가 은혜 받으면 남에게 은혜를 끼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차가우면 차가운 기운이 나갑니다. 내 마음이 성령으로 뜨거워지면 뜨거운 불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자 바울이 이렇게 십자가의 도를 성령으로 전하니까 많은 결실이 있었는데 베뢰아 사람들은 그 마음의 풍토가 참으로 좋았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밭’이라고 했는데 각각 그 마음 밭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의 정서가 복음에 수용적이거나 덜 수용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4) 넷째로 베뢰아 사람들은 신사적이었습니다.
이 말은 원어로 ‘에우게베스’라고 하는데-심령의 고상함을 의미합니다. 귀족 출신이어서 성경 상고능력도 있었지만 마음의 풍토가 참 고상하고 신사적 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 영적인 상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 한국에서는 전도하기가 상당히 쉽고 열매도 많습니다. 그러나 일본 같은 곳에서는 복음이 잘 전해지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의 정서가 복음 전하기에 부적당하기 때문입니다. 수백만의 귀신과 다른 종교를 믿고 있어 그만큼 마귀의 영권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같은 곳은 많은 성도들의 기도와 수많은 교회들에 의해 사탄이 제약을 받기 때문에 복음전하고 교회를 세우기가 일본보다 훨씬 쉬운 것입니다. 그것은 동네마다 다를 수 있고 사람마다 복음을 받아드리는데 차이가 있습니다. 어느 교회가면 설교가 잘 되고 기도도 잘 되며 어느 교회가면 무섭기만 합니다. 또 말씀을 전할 때도 [아멘],[아멘]하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깨어지지 않는 육신에 속한 자들이 많은 교회는 설교할 때 받는 태도가 불손하고 말귀를 못 알아듣습니다. 즉 영적 상태가 말이 아니라 그 말입니다.
오히려 설교하거나 무엇을 가르치면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거나 시비를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 풍토가 사단의 영향력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은혜 체험이 있는 성도가 많은 교회는 분위기가 부드러우나 육신적인 성도가 많은 교회는 말씀전하기도 어려고 힘듭니다. 일일이 다 챙겨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은혜 받지 못했던 제자들에게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했습니다.(요16:12) 이는 말귀를 못 알아듣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혜린이 하고는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대화가 안 됩니다. 왜냐하면 아직 어려서 성령 충만함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중학교나 들어가면 은혜 받게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애 하고는 신령한 것이 잘 안 통합니다. 자기 소리를 냅니다. 그러나 바울이는 중학교 2학년인데 하나님 중심이고 그래도 영적으로 통하는 게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벌써 성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은 영적인 차이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심령의 상태가 매우 고상해서 복음을 받아들이기가 쉬웠던 베뢰아 사람들을 성경은 ‘신사적’이었다고 했습니다.
집사님들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깨지지 않아서 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부드럽고 좋은 심정을 가지고 겸손한 분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이생의 헛된 자랑과 교만을 버리고 여러분의 마음 밭이 옥토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여러분이 높아지기 위해서나 잘난 척 하라고 구원받은 것도 아니고 직분 맡긴 것 아닙니까. 와장창, 주장창하고 이천석 목사님식의 깨어지는 역사와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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