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행 17:5-9
제목 : 환영과 반대
설교 : 이남웅 목사(95.9.25주.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언제나 환영과 반대라는 상반된 반응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바울 전도를 받고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쫒았으나 한편 유대인들은 시기가 가득해서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바울과 실라가 묵고 있는 야손의 집을 습격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도가 마침 집에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집 주인인 야손과 그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고소를 했습니다. 죄목은 로마제국과 황제를 대항하는 반역자들과 불순종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야손이 그들을 그의 집에 묵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에서는 소동이 벌어졌으나 조사해보니 별 문제가 없어 이를 보고 받고 석방했다는 것입니다.
이 소동 때문에 두 사도는 그 밤으로 뵈뢰아로 떠났습니다. 과연 천하를 요란케 하는 인물들로서 거기 가서도 또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과 그들이 이끌고 온 괴악한 불량배들은 사도의 숙소를 습격해왔습니다. 유대인들이 이토록 그들을 괴롭힌 것은
1) 첫째로 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율법과 축복을 독점하려는 무리였습니다. 자기들 밖에는 아무도 하나님을 못 섬긴다는 식의 독선적인 선민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일어나 하나님을 온 세상에 전파할 뿐만 아니라 새 종파가 일어나 자기들이 인정할 수 없는 예수라는 사람을 그리스도로 선전하므로 그것도 기분 나쁜데 가는 곳마다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으니 시기가 일어난 것입니다. 시기는 본래 사탄적인 것이지만 타락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래서 보통사람이라면 거의 다 사촌이 땅을 사면 멀쩡하던 배가 아파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육신적인 신자들에게도 있습니다. 이것이 특별히 강한 자도 있고 적당하게 있는 자도 있습니다,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는 아픔을 가져다줍니다. 분하, 밉고, 죽이고 싶고 그래서 별것도 아닌데 유대인들처럼 무슨 큰 죄라도 진 것처럼 모함하고 비방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세히 조사해 보면 별것도 아닌데 문제가 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시기 때문에 남 잘되는 것 못보고 중상모략을 서슴없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분수없이 날뛰며 형제를 모함하는 것입니다. 시기 때문에 협동하여 하나님의 일도 못합니다. 이것은 마치 끈질긴 거머리처럼 달라붙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시기심에 붙들리면 이성이 마비되고 별짓을 다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못된 짓을 다 합니다. 시기 속에 귀신이 들어있습니다. 질투가 일어나도 속에서 끝내고 그것이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2) 둘째로 사도들을 무고히 고소했습니다.
그들이 고소한 제목은 어마 어마했습니다. ① 로마제국에서 국가적으로 승인되지 않은 종교를 가르치므로 천하를 어지럽히고 ② 황제를 배반하고 다른 ‘예수’라는 임금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의 죄목은 빌립보에서 귀신들린 여종과 그 주인들이 고소한 내용과 같습니다.(행16:20-21) 「이 사람들은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였고 로마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 풍습을 전한다.」했고 또 행24:5에 유대인의 변호사 더들로가 바울에 대하여 고소한 내용과 같습니다. 「우리가 여쭈옵나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들은 가는 곳마다 사회를 소란케 하는 불순한 자들었고 국가 반역을 도모하는 자들로 낙인찍혔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증거가 없기 때문에 곧 석방되곤 했습니다. 시기에 눈이 뒤집힌 유대인들은 옳고 그른 것을 따질 것도 없이 어떻게 해서든지 두 사도를 얽어 넣으려고 흉계를 꾸몄던 것입니다.
사실 시기와 질투에 눈이 멀면 이성이 마비되어 어떤 방법으로든지 상대를 잡으려고 합니다. 따라 하십시오. 나는 사람을 절대로 잡지 않는다. 그래서 없는 말도 만들어 내서 유포시키는 것입니다. 그들을 나쁘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후일에 이 시기와 질투꾼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심문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죄로부터 벗어 나옵시다. 회개하고 착하게 살려고 해도 죄를 끊기가 어려운데 전혀 그런 회심의 마음이 없이 무조건 사람 잡으려고 말을 지어내고 이간질시키고 문제를 일으키고, 싸움과 소란을 일으키는 자들은 몸은 교회 안에 있으나 마음은 지옥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 마음을 바로 잡아야합니다. 이간질 하는 입, 간사한 입, 교활한 말,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모두 버려야 할 것입니다. 버리지 않으면 은총이 떠나갈 것입니다.
3) 셋째로 두 사도는 그날 밤으로 정처 없이 떠나게 되었습니다.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혔다가 떠나 온지 어쩌면 한 달도 못되어서 또 폭도들의 습격을 받고 관에 고발되어 쫓겨난 것입니다. 어딜 가나 이런 꼴이었습니다. 항상 이런 일이 재현되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복음에 대한 열정은 식어들지 않았습니다. 다른 도시로 가면 처음부터 다시 똑같이 복음전도를 시작하곤 했습니다.
그들이 다음 전도지인 베뢰아에서도 또 핍박을 당해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러면 이들을 이렇게 강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거의 평생을 심한 고생과 고난을 당하는 이들이 무엇 때문에 이토록 굳센 마음으로 복음전도를 쉬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바울은 고후1:4-8에서 [하나님의 위로하시는 은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특별하신 은사인데 이제껏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고후1:5에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했고 6절 하반 절에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견디게 하는 은사가 바로 위로의 은사입니다. 이것이 오면 매를 맞아도 좋고, 죽어도 좋고, 욕을 먹어도 좋고, 쫓겨나도 좋고, 옥에 가도 좋고, 환난이 와도 넉넉히 은혜와 충성을 바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믿음을 세상이 못 이기지 이런 특수한 은사가 없으면 우리는 중첩된 고난을 견디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후6:10에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또 고후7:4에 「내가 너희를 향하여 하는 말이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 도다.」했습니다.
그때에 그는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뿐이었는데 하나님의 위로가 이런 가운데서 그들을 기쁘게 하고 견디고 복음을 전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위로의 은사는
0.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견디게 하는 은사요
0. 환난과 핍박을 당한 성도들에게 주시는 은사요
0. 이 은사가 많은 충성스러운 신자를 만들어내며
0. 많은 순교자를 만들어 내는 은사인 것입니다.
이 좋은 은사가 임하면 히브리서에 있는 대로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히11:35-38)했습니다.
[결론입니다] 시기심을 버립시다. 시기심으로 분수를 넘어 형제나 자매를 해치는 일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또 주를 위한 고난을 견디게 하는 위로의 은사가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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