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행 17:1-4
제목 : 바울의 전도방법
설교 : 이남웅 목사(95.9.24 주.낮)
본문에는 빌립보 남서쪽 약 53km쯤 되는 암비볼리와 그리고 암비볼리 남서쪽 약 43km쯤 되는 아볼로니아를 지나서 당시 마케도니아 지방의 수도로써 가장 번성하고 있던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의 전도활동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는 B.C 167년 마케도냐를 정복한 로마에 의해 마케도냐의 제2 수도가 되었으며 BC 142년 마케도냐주가 재조직 되자 주의 수도가 되었으며 같은 해 로마의 2차 내란 시 빌립보 부근의 싸움에서 옥타비아누스 후에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편을 들었기 때문에 자유도시의 특권을 부여 받았습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인구는 20만 쯤 되는 대도시였기 때문에 바울은 이곳을 발칸반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보았던 것 같습니다.(살전1:7-8) 그래서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160km나 떨어진 데살로니가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들은 습관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3주 동안 복음을 증거 했을 때 헤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바울을 쫒았습니다. 이 말씀가운데서 우리는
1) 첫째로 바울의 전도방법인 회당 전도를 볼 수 있습니다.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다.」했습니다. (1) 여기 말하는 자기 ‘규례대로’라 함은 헬라어로 ‘에도스’라는 말인데 습관에 익숙한 일이란 뜻입니다. 즉 바울은 어느 도시에 들어가면 습관처럼 회당을 찾아가서 복음을 강론하고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회당이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는 못 나가므로 각 지역마다 10가정만 모이면 회당을 만들고 안식일마다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강론하던 일종의 예배당이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성전개념과 회당개념과 성도라는 뜻이 복합되어 이루어졌는데 현대의 각 지역에 있는 예배당, 교회당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하나님 백성들이 모이므로 손쉽게 전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전하기가 불신자들에게 훨씬 쉬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회당 전도 법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식으로 말하면 개척교회와 같습니다. 회당을 확보하고 교회를 세우고 각종 성물을 확보한 후 설립예배를 드리고 전도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냥 아무 근거도 없이 떠돌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일정한 장소에 교회를 세우고 오는 사람들에게 말씀 전하는 이 방법이 바로 회당 전도법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더 많은 사라들이 회당에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어디가든지 이 방법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살라미와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 에서도 그의 습관대로 말씀을 들고 회당에 들어갔습니다. 회당이 없는 도시에서는 기도처를 찾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방법이 상상이외로 많은 백성들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 많이 하면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면 뜻밖에 큰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시는 회당을 새로 지을 것도 없이 이미 예비 된 회당이 있었고 예비 된 사람이 나타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대개 교회가 다 그렇게 해서 부흥되었습니다. 바울의 전도방법에 대하여 논하라 하면 회당전도법입니다. 이처럼 하면 될 것입니다.
2) 둘째로 바울은 안식일마다 회당에 갔는데 그것은 자기규례 곧 습관에 따른 것입니다.
바울처럼 우리들도 안식일 곧 주일이면 반드시 교회에 가는 아름다운 습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이 날을 복 주어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이날 여호와께서 하시던 모든 일을 마치셨습니다. 그리고 쉬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주일이 되면 교회로 와서 은혜를 받아야지 단풍구경으로, 야외로, 다른 곳으로 가면 안 됩니다.
오직 주일은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거룩하게 성별해야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주일은 하나님의 날이요-내 날이 아닙니다. 그리고 복 받는 날이요. -그래서 성도가 6일 동안 부지런히 일한 대가를 복으로 받는 날이고 -일할 때는 일하고 복 받을 때는 복을 받아서 편히 쉬는 날입니다. 그렇지 않고 일할 때에 놀고 쉴 때, 예배드릴 때 일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바울은 회당에 가는 것이 습관-규례였습니다. 여러분도 이것이 규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일도 못 지키는 성도가 왜 그리 불만은 많은지요. 하나님 앞에 죄송할 뿐입니다.
여름에는 휴가 간다고 사라지고, 추석에는 고향 간다고 안 보이고, 이제 가을이 되었으니 단풍구경 간다고 주말이면 야단일 터이니 점점 신앙생활하기가 어려워지는 세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여도-여러분의 주일성수]의 아름다운 습관은 변치 않으시길 바랍니다.
3) 셋째로 바울은 가는데 마다 믿음의 자손들을 출생시켰습니다.
본문 4절에 「그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헤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이 믿었다.」고 했습니다. 어디 가든지 믿는 자가 생겼습니다. 곧 복음으로 믿음의 자손들을 많이 출생시킨 것입니다. 인간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택한 백성이 숨어있습니다. 전도를 하면 그들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했는데 확실히 무엇을 전할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를 전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를 전할 것입니다. 결과가 중요하지만 거기 집착하지 말고 끝없이 뿌리고 또 뿌리다보면 마침내 때가되면 열매가 맺히게 되고 “기쁨으로 그 단을 가져오리로다.”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4) 넷째로 그의 회당전도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서 해를 받고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셨는데 예수께서 바로 그분이시다.”대개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아주 간단하고 확실한 진리였습니다. 이것만 전하면 구원받는 사람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바울은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했습니다. 그는 참으로 복음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가르치고 권하는 것이 분명하고 간단하고 확실했습니다.
<예-구원론>1974년 2월 19일 이후 하나님께서는 내게 특별하신 섭리를 가지고 역사하셨습니다. 성경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도록 이상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때 내가 깨달은 것은 성경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막상 조직적으로 가르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지식이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구원을 어떻게 받느냐 할 때 [믿음으로 받습니다.]하고 말은 할 수 있지만 자세하게 성경을 가지고 명료하게 가르치지 못하고 막연하게 가르친다는 문제점입니다. 그래서 조직적인 말씀연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첫 번의 주제가 [사람이 구원을 어떻게 받는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속의 구원과 연관된 말씀들을 뽑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명료하게 떠오르면서 “야”하고 환하게 보이는 구원론의 진리 앞에서 얼마나 놀라워했는지 모릅니다. 저 루터가 깜짝 놀라고 웨슬레가 감격했던 그 이신득의의 교리가 뚜렷한 모습으로 떠올라 오는 그 감격스러움은 잊을 수가 없는 추억입니다. 내가 너무 감격스러워하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는 염려가 되셨던지 꿈속에서 내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추수가 끝난 들판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삭을 줍고 있었습니다. 깨어보니 꿈인데 당장 그 뜻이 무엇인지 알아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알았습니다. “네가 구원론 진리를 깨닫고 감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지만 이 진리는 이미 벌써 수많은 성도들과 주의 종들이 깨닫고 은혜 받은 것이요, 이미 추수가 끝난 진리인데 너는 뒤늦게 이삭 줍듯 구원론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너무 기뻐서 교만해지지 않도록 주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말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내 생애에 하나님께서 잠을 안 재우신 일이 세 번 있었는데 첫째는, 마귀의 직접 시험을 받을 때의 밤이요. 둘째는, 1974년2월하순경부터 약2년 간 성경연구 기간 중 성경을 안 읽고 연구 안하고 자면 잠을 못 자게 하셨고 반드시 일어나 조금이라도 공부하고 자야했으며 셋째는, 우리 혜린 교회 개척할 때 전도 안 한날은 잠을 못 자게 하셔서 밤중에라도 꼭 나가서 전도지 한 장이라도 전해야 했으며 넷째는, 요즈음 가정예배가 우리 집에서 안 들려지면 잠을 못 자게 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강권하시는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쨌든 이때 구원론의 진리를 깨닫고 체계화시킨 것이 오늘 우리 교회에 적용된 구원론 교육입니다. 바로 그것이 바울사도가 가르친 그 구원론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믿어라. 그래야 산다는 복음진리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진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주 예수를 찬양합시다.
바울의 회당전도의 형식이 오늘날 교회개척 그리고 모든 기성 교회들의 전도모습과 같습니다. 성경말씀을 강론하며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으라고 날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전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