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행 16:19-34
제목 : 빌립보 감옥에서 생긴 일
설교 : 이남웅 목사(95.9.17주.낮)
본문은 제목 그대로 빌립보 감옥에서 생긴 일입니다. 바울과 신라는 점하는 귀신들린 여자를 고쳐준 대가로 그 주인의 노여움을 사서 끌려와 관원들에게 넘겨졌습니다. 온 도시를 요란케 하고 로마인들 듣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할 풍습을 전한다고 모함을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빌립보 경찰서에 붙잡혀 들어간 것입니다. 그 지역 유지들의 고소사건이라서 빌립보 관원들은 바울과 실라의 사정을 들을 것도 없이 무조건 나쁜 사람으로 몰아 부치었습니다. 그래서 상관들은 옷을 찢어 벗기고는 매로 많이 때린 후에는 옥에 가두고 발에는 착고를 채우고 든든히 지키게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의 몸은 태장에 맞아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바울은 고후11:23-25에 「옥에 갇히기도 도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번 하였으며, 태장으로 맞았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은 깊은 옥 속에 가두어지고 든든히 지킨바 되었습니다. 참으로 억울하고 분한 밤이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성도들에게는 때로는 역사의 암흑기나 인생의 한 장면에서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엄청난 불이익과 손해를 보는 수도 있습니다. 사도들에게 있어서 이런 일은 보통이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하던 그 시대에는 오늘 우리나라와 같이 편하게 믿고 전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도처에 유대인들이 깔려있고 원수들의 압박이 많은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도자가 되려면 목숨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3-24)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1) 첫째로 주 예수님을 위하여 받는 고난과 핍박이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큰 환난을 당한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으라는 아내의 악담에 대하여(욥2:10)「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중 하나의 말과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 하겠느뇨」했습니다. 사실 자연계에 태풍이 불고 좋은 날이 있는 것처럼 인생을 살다보면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것입니다. 그 많던 재산이 다 날아가고 일곱 아들이 삼풍백화점 무너지는 것처럼 무너져 거기 깔려 죽었을 때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으로 나왔은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가올지라. 주신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어다」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주의 뜻이요. 모든 것이 주께 찬송할 제목인 것입니다. 고난과 순종을 배운 것입니다.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시기를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5:11-12) 했습니다.
자 우리가 은혜를 받았은즉 또한 하나님을 위하여 고난과 수욕을 당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한 고생이나 핍박은 오히려 상이 되고 복이 되며 기뻐하고 즐거워하여야 신령한 축복인 것입니다. 아무나 다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오직 성령의 특별한 은사로서 순교와 고난의 종들이 선출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그 동생 안드레는 헬라에서 X자형 십자가에 달려죽고 그래서 그 형제가 다 예수 믿고 비참히 죽은 것입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헤롯의 칼에 주고, 빌립은 부르기아에서 기둥에 달려죽고 바돌로매는 아르메니아에서 거꾸로 매달려 죽고 마태는 에디오피아에서 목 베임을 당했고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성전 꼭대기에서 던져 주고, 도마는 인도에서 창에 주고, 시몬은 유대에서 활에 죽었으며 야고보의 동생 유다는 페르시아에서 활 맞아 죽고, 맛디아는 에디오피아에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과 복음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한 일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걸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1917년 소련혁명 때 (1917-1921.7)4년 동안에 박해로 죽은 자가 1,766천명 이었는데 그 중에 승정이 31명, 사제1,160명, 수도사. 수녀 7,000명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의 매 맞음과 옥에 갇히는 사건은 그들의 영광이요. 주님 주신 축복이었습니다. 행여 우리도 주님 때문에 고난이 닥칠 때 낙심. 원망 말고 찬송하여 영광돌리시기 바랍니다.
2) 둘째로 기도하고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때는 밤중 깊은 감옥 안이었습니다. 발은 착고에 든든히 묶이고 온 몸은 상처로 터졌는데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다보니까 성령이 감동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또 찬송을 했습니다. 감옥에 들어와서 기도하고 찬송한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주님의 사도 삼으시고 주님위해 고난당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옥중에 매인 성도나 양심은 자유 얻었네.” 눈물이 쏟아지고 감동이 오고 기쁨이 왔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가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의 찬송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야고보 장로는 말하기를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약5:13)]했습니다. 어려운 일 당할 때 성도의 할 일은 기도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도는 항상 해야 하는 것이지만 고난과 시험이 닥쳤을 때는 특별히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각종 합심기도회, 작정기도. 철야기도, 금시기도 등으로 우리는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고 해방과 축복을 얻습니다. 어떤 이는 금식기도를 무시하고 철야기도를 무시하고 무릎 꿇고 하는 기도를 무시하지만 그리고 혹자는 통성기도를 멸시하지만 이 모든 기도가 성경적이며, 어떤 마귀는 기도와 금식 외에는 나가지 않는 경우도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주 예수께서 또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신 것”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어떤 군인도 적군 앞에서 눈을 감을 수 없는 것입니다.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깨어서 기도하기로 작정하는 순간부터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무기력해지고 영적인 활기를 잃는 것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학식이나 웅변이나 좋은 옷이 필요 없습니다. 기도에 빈곤한 자는 영적인 파탄과 정체가 오는 것입니다.
바울처럼 옥에 갇혔을 때 우리를 구속하는 강한 환경과 힘의 도전을 받을 때 오직 엎드려 기도할 뿐입니다. 아주 깊고 깊은 기도는 난제를 해결해줍니다. 이제는 사람들과 더 이상 말하지 말고 하나님과 말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틈만나면 들이나 산으로 시도, 때도 모르시고 기도하심으로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기도는 자랑할 것이 아닌 당연한 의무입니다. 마귀도 기도하는 사람을 알아봅니다.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늘 너희는 누구냐.]하며 덤벼들었습니다.
기도도 안 하고 믿음도 없는 자들이 주의 이름을 사용할 때 마귀가 당장 알아버리는 것입니다. 고난과 풍파, 시험과 질고는 기“도로 물리쳐야합니다. 여러분의 기도생활과 태도를 다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42:14~내가 오랫동안 고요히 하며 잠잠하여 참았으나”했습니다. 또 “이제는 내가 해산하는 여인같이 부르짖으니 숨이 차서 헐떡일 것이라”했습니다. 이제는 일어나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3) 셋째로 그들은 하나님을 찬미 했습니다.
찬송은 사람과 천사의 의무입니다. 바울과 실라의 찬송소리가 빌립보 옥중에 퍼졌습니다. 죄수들이 모두 들었습니다. 어렵고 괴로운 일을 당하고 원망과 시험이 일어날 때 성도가 해야 할 마지막 부분은 감사와 찬송입니다. 한 사람이 한 번 감사하는데 병균이 수만 마리 죽는다고 합니다. 원망은 사탄의 표현이고 감사와 찬송은 성령의 언어입니다. 감사와 찬송은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우리의 유익을 위해 준비한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하고 찬양과 감사를 드리십시오.
30년 동안 알콜 중독자를 아버지로 둔 사람이 있었습니다. 도무지 고칠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였습니다. 온 집안의 화근 덩어리였습니다. 그래서 그와 그 아내 그리고 어머니가 함께 술을 끊어주시기를 가도했으나 응답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감사와 찬양의 능력에 대한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충격이었습니다. 그는 한 번도 아버지의 술주정에 대하여 감사한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이후 그는 아버지의 술주정에 대하여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하여 범사에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저녁 식사 때 그 아버지가 [어제 저녁 뉴스에서 들었는데 아편중독자가 약을 끊었다는데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니?]하고 물어봤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성령이 그 주정뱅이에게 역사하셨습니다. 고침을 받게 된 것입니다. 불가능한 것이 가능해 진 것입니다. 30년 동안이나 아버지를 변화시켜달라고 기도했으나 감사와 찬양을 드린 것은 단 하루였는데 그것이 무서운 위력을 나타낸 것입니다.
고난과 시험과 불행 속에 있는 분 원망이 일어나는 분은 지금 당장 감사와 찬양을 드리십시오. 롬8:28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했기 때문입니다.
한 젊은 여자가 어떤 난처한 사정에 빠져서 자제심을 잃고 화가 나면 뭐든지 먹어댔습니다. 그러니까 몸이 불어나서 급기야는 배가 불룩불룩해져 남편은 이를 보고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더니 이혼하자고 하면서 집을 나갔습니다. 그녀는 자살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녀는 여러 사람에게 기도를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교회 친구들은 [신앙을 잃지 말아요. 시험에 지면 안 됩니다.]했지만 별 도움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감옥생활에서 찬송생활로]라는 책을 주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있고 찬양의 능력에 대하여 증거한 책이었습니다. 그는 크게 감동을 받고 이제부터 감사하며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즉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저의 삶의 이런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십니다.]그때 개 짖는 소리가 났습니다. 짜증스런 마음이었지만 그것마저 감사했을 때 마침 우체부가 편지를 가져왔는데 남편의 편지였습니다.[당신이 아직도 원하고 있다면 둘이서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해봅시다] 하나님의 예지와 능력은 그녀가 정확히 찬양과 감사의 능력을 깨달았을 때 남편 돌아오는 소식이 그녀의 손에 닿게 하셨습니다.
그녀의 몸은 마치 버터가 녹듯이 살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마치 빌립보 가옥의 찬송소리가 기적을 일으킴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이 고달프고 괴로우십니까. 질병이 있습니까. 시험을 당하고 계십니까. 사업이 실패하셨습니까, 아들이 없으십니까. 결혼을 못했습니까? 자 이제 원망을 그치시고 오히려 감사의 기도와 찬양을 올리십시오.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입니다. 아니 문제해결보다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가 비록 우리를 죽이신다하더라도 우리는 감사할 뿐입니다. 감사와 찬송을 끊지 마십시오. 옥문이 열리고 터가 진동하고 매인 것이 풀어지고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고난과 불행 중에 하는 최선의 영적 원리인 감사와 찬양에 대해 꼭 깨닫고 가셔야 합니다. 할렐루야, 가장 강한 능력으로서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를 마귀는 가장 두려워합니다. 감사하면서 살기로 했네. 찬송하면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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