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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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21:1-14

제목 : 가이사랴에 도착한 바울

설교 : 이남웅 목사(95.11.26..)

 

 

밀레도에서 그 유명한 고별 설교를 마치고 에베소지역의 장로들과 울면서 헤어진 바울 일행은 배를 타고 고스-로도-바다라를 지나 구브로 서쪽 바다를 지나서 마침내 이스라엘이 가까운 두로에 상륙했습니다. 터기 서남방 지점에서 터키 남부의 지중해를 지나는 먼 뱃길이었습니다. 두로에 있는 제자들을 만나 거기서 7일을 머물렀습니다. 배가 그곳에서 짐을 풀려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두로 교회의 성도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곧 위험한 일이 있을 것이니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바울도 자기 앞에 다가오고 있는 어두운 일들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저 없이 떠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7일 후에 그들이 다시 배를 타고 떠나갈 때 성도들의 온 식구까지 다 나와서 성문 밖까지 전송을 나왔습니다. 그들은 서로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 후 그들의 집으로 돌아가고 바울 일행은 배에 올랐습니다. 그들은 돌레마이어에 이르러 그곳 형제들과 하루를 묵은 후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그 유명한 7집사중의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빌립은 사마리아 교회를 세운 자요,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전도한 자로써 신유와 축사와 전도의 은사가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그에게 딸 넷이 있었는데 그들이 다 처녀로서 예언하는 자였습니다.

 

여러 날 그 집에 유하였는데 바울이 허리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묶고는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이 띠 임자를 예루살렘에서 결박하여 이방인들에게 넘겨주리라.했습니다. 밀레도에서 그랬고 두로 에서도 같은 예언이 임했고 가이사랴에서도 여전히 같은 내용의 예언이 주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빌립 집사를 비롯하여 가이사랴 교인들과 누가 등 전도대원들이 바울에게 울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마십시오.]하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미 주님을 위해서 죽기까지 각오한 바가 있었기 때문에 어찌하여 너희가 울어서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작정하였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성도들은 [주의 뜻대로 되어 지리이다.]하고 그쳤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떠날 때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하며 한 오랜 제자인 구브로사람 나손을 데리고 떠났습니다.

이 말씀가운데서

 

1) 첫째로 초대교회 교회간의 친밀한 유대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 밀레도. 두로. 가이사랴 교회 등을 연결하고 있는 끈끈한 정이 느껴집니다. 두로에서 배가 짐을 풀려고 7일간 머물렀을 때 바울과 그 일행은 그 지역의 교회와 성도를 찾아 머물렀으며 영적인 은혜와 교제를 나누었습니다.(4) 그리고 돌레마이에서 하루를 묵을 때도 그곳 교회들과 함께했습니다. 또한 가이사랴 교회에서도 여러 날 있었고 성령의 은사를 나누었습니다. 이런 내용의 말씀은 평범하고 단순한 것인데 어찌해 말씀의 첫 대지가 될 수 있느냐 하면 오늘 날 우리 교계의 인심이 너무 각박하고 형제애적인 유대관계가 파괴되어 있어 매우 적막하기 때문입니다. 그 원인은 교회가 너무 좁은 지역에 난립해서 마치 적자생존을 위한 치열한 생존경쟁이 계속되는 자연계와도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엄청난 경쟁이 벌어져서 교회들 간의 거룩한 전쟁이 마치 전쟁처럼 치열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개교회주의가 크게 발달해 남의 교회 생각할 여유도 없이 내 교회 하나 유지하기도 힘든 그런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있었던 형제애적인 교회간의 사랑과 유대가 점점 사라져갑니다. 내 교단, 내 교회 중심의 신앙시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안하면 살아남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목회 윤리가 땅에 떨어진지 오래 되었고 정당한 전도방법이 아니라 남의 교인이라도 빼앗아 내 교회를 채우려는 식의 전도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러지 마십시다, 완전히 다른 교회에 뿌리를 내린 남의 교인은 절대로 데려오지 맙시다. 차라리 새 신자 전도해서 구원론을 가르치고 은혜 받게 하는 것이 더욱 은혜롭습니다. 앞으로 새 성전에 가면 그 주변의 여러 성도들이 전도운동과 기도회 등을 통하여 소문 듣고 몰려와서 본의 아니게 타 교회나 이웃 작은 교회들에게 피해를 입힐까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복음 전하고 부흥운동 하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힘이 있는 곳, 은혜가 있는 곳으로 몰리게 되어 있고 예수께서도 그것 때문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미움을 받으셨으며 사도들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목회와 전도의 정도를 걸어가야만 하겠습니다. 혹 교회에 들어오는 무리에 끼어서 타 교회의 교인이 있을 경우는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전담부서와 목사님을 두어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정하고 이웃 교회와의 화평을 도모하려고 합니다.

 

교회들 간의 냉기류기가 심해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갈수도 있고 올수도 있으나 합법적으로 올 것이며 서로 양해 하에 올 것이며 서로 덕을 세우며 교회를 옮길 것입니다. 교회가 너무 난립하는 원인은 교단과 신학교의 난립 현상에서 일어난 것인데 일정 비율의 교인을 가진 상호에서 특별한 부흥도 없이 교회 수만 늘어나서 잘 부흥하는 교회가 많지 않고 목회환경은 열악해져 가고 사회는 점점 변해 가는데 은혜 없이 목회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영적 불황기로 한국 교회가 접어들고 있습니다.

 

불교의 승려들은 이 절 저 절 떠돌면서 수도를 하고 어느 절에 가서 있으면 머고 사는 것은 걱정이 없는데 우리 교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큰 교회들이 신학생이나 목회자가 없는 교역자들이 언제든지 가면 먹고 자고 지내며 기도도하고 봉사도 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었으면 좋겠고 요즈음도 간혹 어떤 산중의 기도원들은 숙식을 제공하는 곳도 있으나 모든 기도원이나 큰 교회들이 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주일날 누구나 점심식사를 하듯이 말입니다. 옛 초대교회는 [나그네와 손 대접 잘 하기로 유명했습니다.] 그 나그네의 대부분이 복음위해 유랑하는 전도자들이었고 성도였습니다. 그래서 성경 도처에 나그네와 손 대접 잘 하라고 하시는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과 인정이 훈훈한 그런 기독교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 둘째로 전도자 빌립 즉 빌립 전도사님의 가정의 모습입니다.

전도자 빌립은 초대교회가 세운 첫 집사 7명중 한 사람으로서 성경에 스데반 다음에 기록된 분입니다. 그는 성경대로라면 성령이 충만했고(6:3), 지혜가 충만했습니다(16:3). 지혜가 중요한 것은 은혜는 충만히 받았는데 지혜가 없어서 오히려 덕을 해치고 미련하게 행하는 사람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충만했으며(6:5)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6:3)뿐만 아니라 전도의 능력도 있어 혼자서 사마리아 교회를 개척한 전도사였습니다. 전도사가 무슨 뜻이냐 하면 전도하는 선생님(8:5, 40,29)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도사님들은 전도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또한 그는 기적, 표적을 행하는 능력도 있었으며 그래서 하늘을 날아서 홀연히 사라지기도 했습니다.(8:39) 뿐만 아니라 병 고치는 능력도 있었고 귀신도 쫓아냈습니다.(8:7)

 

그래서 그의 사역 중에 많은 중풍병자가 일어났고 앉은뱅이도 일어났으며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소리 지르며 떠나기도 했습니다. (8:7)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은사도 있었습니다.(8) 또한 이런 훌륭한 주의 종의 가정에 딸 넷이 있었는데 그녀들이 아직 다 미혼이었습니다. 딸들이 아버지를 닮아서 다 신앙이 좋았고 성령의 은사가 있었으며 예언하는 처녀들이었습니다. 은혜가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조의 신앙에 미치지 못하여 아비를 욕되게 하는 일이 많은데 선지자 사무엘의 아들들과 같이 제사장 엘리의 아들들과 기드온의 아들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빌립의 딸들이 다 은혜 있는 것을 보니 우리의 아들과 딸들도 저렇게 은혜를 받는 아이들이 되게 하자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자식이라도 성령이 함께 하시는 자와 그렇지 못하는 자가 다릅니다. 서로 통하지가 않고 하나님 섬기는 게 다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자녀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믿지 않거나 믿어도 성령 충만한 체험이 없는 자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이 행복하고 한 마음이 되고 본인에게도 축복이요,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신이 여러분의 자녀위에 계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수양회 보낼 때나 집회 때는 반드시 딸려 보내서 은혜를 받게 해야 합니다. 놀러 데리고 강가나, 바다로 가는 것 보다 백 배 유익한 것이 은혜 받는 곳에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의 가정에 성령이 충만하시고 또 온 한국 교회가 뜨거운 사랑과 인정으로 교통할 수 있기를 바랄뿐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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